▲거리의 식당<겨울연가> <주몽> 포스터가 붙어있다.
김준희
마을을 벗어나자 도로 양옆으로는 목화밭이 계속 펼쳐진다. 앉아서 쉴 곳이 없기는 사막이나 목화밭이나 마찬가지다. 한참을 걸어서 또 다른 마을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상점으로 가서 음료수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상점앞에 있는 작은 탁자에 앉아있으니까 이곳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한국 드라마 DVD를 보여준다. 겨울연가.
TV에 DVD 플레이어를 연결하더니 겨울연가를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상점에 있던 다른 사람도 한국드라마가 최고라면서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TV에서는 어느새 <겨울연가> 1회가 나오고 있다. 최지우가 버스에 앉아있는 모습, 배용준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에는 주유소의 TV에서 <대장금>을 보았다. DVD로 본것이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방송국에서 실제로 방영하는 것을 본 것이다. <대장금>은 러시아어로 대사를 녹음해서 방송한다. 그런데 녹음상태가 그리 깨끗하지 못하다. 한국어 대사를 완벽히 지우고 다시 녹음한 것이 아니라서, 집중해서 들으면 러시아어 뒤로 한국어 원음이 들린다.
나는 한국에서 이 두 드라마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보지 못햇던 드라마를 이 먼 곳에 와서 보게되다니. 이것도 참 대단한 우연이다. 러시아어로 녹음된 <대장금>에서는 이영애를 가리켜서 '탕김'이라고 부른다. <겨울연가>에서는 배용준을 '준상'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면서 현지인들이 나에게 '준상', '탕김'을 연발했던 이유를 이제서야 깨닫는다. 이들에게 한국은 준상과 탕김의 나라다. 그리고 <주몽>의 나라이기도 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주몽>의 인기는 대단하다. 아이들은 주몽이 박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어른들은 주몽이 그려져있는 성냥갑을 들고 다닌다. 주몽 포스터가 붙어있는 가게도 많다. 특히 성인 남성들 사이에서 '쏘시어노'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배우 한혜진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하면 아마 타슈켄트 공항이 현지 남성들로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여행하면서 또다른 한국드라마를 본 적도 있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차인표가 등장했던 드라마인데 제목이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현지인들이 제목을 말해주었지만, 나의 형편없는 러시아어 실력으로는 알아듣지를 못했다.
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 있을까. 여행하면서 만났던 한 여성이 나에게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그 여인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공통점을 이야기 했었다. 평상바닥에 책상다리로 앉는 것을 좋아하고 나이를 구별해서 연장자를 존대하는 경향이 많다. 인사할때는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실 때는 상대방 잔에 술을 따라주고 '원샷'을 한다.
이런 공통점이 한국드라마를 좋아하게 만든 요인중 하나일 것이다. 많은 현지인들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친구!'라고 말한다. 터키에서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한다던가. 때로는 형제보다 친구가 더 좋게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다. 적어도 이들에게 한국이 익숙한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70년 전에 강제이주돼서 이곳에 정착한 고려인들을 포함해서 대도시에 깔려있는 수많은 LG와 삼성 가전제품, 우즈베키스탄의 도로를 누비고 있는 대우자동차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으로 작용한다. 그러니 한국드라마가 수입되면 일단 낯설지 않게 바라볼 것이다.
저녁에 작은 도시 굴리스탄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