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드 가는 길길가에 있는 칼리지의 정문
김준희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사마르칸드에 대해서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필수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지, 그렇게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정사보다는 야사를 더 좋아했던 나에게, 사마르칸드라는 단어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떠오르게 만든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도입부는 사산 왕조의 대왕이 두명의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중에서 형이 대왕의 뒤를 잇고, 동생을 멀리 동쪽으로 보내서 사마르칸드를 다스리게 한다.
사산 왕조는 기원후 7세기까지 유지됐던 이란의 정복 왕조다. 지금의 이란에서 사마르칸드까지는 수천 킬로미터인데 어떻게 그 먼길을 이동할 생각을 했을까. 그 길은 고대의 실크로드를 그대로 따라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란의 고원을 통과하고,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 사막, 우즈베키스탄의 키질쿰 사막을 거쳐서 사마르칸드에 도착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마르칸드의 역사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당하고, 그 이후에는 사라센 제국, 몽골 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는다. 그러다가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아미르 티무르가 14세기에 사마르칸드를 수도로 정하면서 도시의 운명도 바뀐다.
그동안 여러차례의 침략 속에서 파괴되었던 도시가 새롭게 재건된 것이다. 아미르 티무르는 자신의 무덤인 구르 에미르, 샤흐이진다 대영묘, 비비하님 성원을 비롯해서 푸른 돔으로 장식된 많은 건축물을 이곳에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유적들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오늘날 사마르칸드는 수많은 외국인이 북적이는 관광도시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중국에서는 사마르칸드를 강국(康國)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경전을 찾아서 천축으로 향했던 당나라의 승려 현장 삼장도 이곳을 방문한 후, 자신의 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통해서 강국의 풍경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사마르칸드는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서 그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터키의 이스탄불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를 지나갈 때, 어떤 길을 택하든지간에 중간에 사마르칸드를 거치게 된다. 이런 지리적이고 문화적인 특징 때문에 당시에는 1년 내내 수많은 외국 상인과 학자들이 모여들었던 도시다.
사마르칸드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