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라 가는 길쭉 뻗은 포장도로가 펼쳐진다
김준희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중앙아시아 최고의 이슬람 종교도시이자, 과거에는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 만큼 이 도시도 여러차례 수난을 겪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칭기즈칸의 침공이었다.
칭기즈칸은 1218년에 지금 카자흐스탄 시르다리야 강 중류에 있는 도시 오트라르를 점령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군대를 이끌고 키질쿰 사막을 건너서 부하라로 진격했다. 당시 이 지역의 군주였던 무함마드는 약 40만 명에 달하는 군사를 이끌고 칭기즈칸에 맞섰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부하라를 함락시킨 칭기즈칸은 1220년 경에 이 지역의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고 한다. 내가 지금 가고있는 부하라가 바로 그곳이다. 내가 키질쿰 사막을 건넜듯이 칭기즈칸도 군대를 이끌고 그 사막을 통과한 것이다. 그 군사가 적어도 수만 명은 되었을텐데, 이 커다란 사막을 건너는 일 자체가 고생이었을 것이다.
수만 명의 군사와 말들에게 어떻게 식량을 조달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물을 어떻게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을까. 칭기즈칸이 걸어온 길은 오트라르-부하라 구간이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어떤 길을 따라서 알프스를 넘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 처럼, 칭기즈칸이 어느 경로를 지나 키질쿰 사막을 건넜는지도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번 그 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트라르와 부하라를 연결하는 최단구간을 설정해보면 어떨까. 칭기즈칸이 군대를 이끌었던 것 처럼, 나도 배낭을 끌고 그 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 한복판에서 어쩌면 당시의 유물이나 무기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키질쿰을 뚫고 온 유목의 전사들은 사기가 최고로 충전되었을 것이다. 사막의 열기가 그들의 가슴에도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막막한 사막을 지나서 부하라의 높은 첨탑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들은 거대한 함성과 함께 돌격했을 것이다. 수백 년의 역사가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전장에서 그들의 용기도 하늘을 찌를듯이 높다.
그 앞에서 무함마드의 군대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부하라를 포기한 무함마드는 서쪽으로 도주하지만 칭기즈칸은 그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칭기즈칸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치던 무함마드는 카스피해의 작은 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 '몽골에 의한 평화'가 구축되던 순간이다.
키질쿰 사막을 건넌 칭기즈칸과 티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