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아름다운 그림책 <아기 물개를 바다로 보내 주세요>입니다.
미래m&b
글을 쓰는 꽤 많은 분들이 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강사나 교사가 되곤 합니다. 대학교에 문예창작과가 그리도 많았는가 싶어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글쓰기를 가르쳐 주는 곳이 퍽 많고, 적잖은 시인과 소설가가 ‘교수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저는 글쓰기는 학교에서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느끼고 있기에, 대학교 같은 데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친다고 할 때에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싶어 몹시 궁금하기도 하지만 슬프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삶 없이 글을 쓸 수 없고,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서 글이 나오지 않으며, 자연 삶터 목숨을 내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야 글에 기운이 실리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글솜씨를 키우려는 생각으로 대학교 문예창작과를 간다든지, 그냥 책이 좋아 간다든지, 아무 생각 없이 원서를 냈다든지 했다면 갈 수도 있는 노릇이겠습니다만, 참으로 책을 좋아한다면 문예창작과도 대학교도 마음에서 잊어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책을 좋아하면 책방과 도서관에 갈 노릇이고, 글을 쓰고 싶다면 수많은 책을 돌아보면서 ‘아직 쓰여지지 않은 가슴 저리는 이야기’로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가운데 ‘우리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이야기’는 얼마나 있는가를 몸소 찾아나서야 한다고 느낍니다.
글쓰기란 겉멋이 아니요, 글쓰기란 대중소설이 아니고, 글쓰기란 돈벌이가 아니며, 글쓰기란 이름값이 아닙니다. 다만,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는 어느 직업인으로 대학교수가 되기도 하고, 시인이 교수가 되기도 하며, 소설가가 교수가 되기도 합니다. 글이 아닌 ‘문예’가 되고 쓰기가 아닌 ‘창작’이 되는 이 나라에서는, 시중 새책방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면서 글삯을 두둑하게 챙기고 비평가들한테 좋은 소리 많이 들으며 이름을 날리게 되면 ‘글 잘 쓰는 사람’인 듯 대접을 받으니, 이러한 겉치레를 좇아 해마다 천만원이나 되는 돈을 대학교에 바치는 젊은 넋이 꽤 많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슬픈 마음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 그런데 엄마가 항구로 돌아와 보니 아기 물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아기 물개를 찾아 온 바닷가를 헤매었어요. 이름을 부르고, 끽끽 소리도 질러 보았지만 아기 물개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아기 물개는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엄마가 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을 때, 한 선원이 모래밭에 있는 아기 물개를 보게 되었어요. 선원은 아기 물개를 데려가 버렸습니다. 선원은 아기 물개를 바닷가 마을에 가서 팔 생각이었어요 .. (2∼3쪽) 엊저녁, 퍽 이름난 시인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곧바로 시디에 구워 건네드리고 나서 함께 막걸리잔을 들다가, 자꾸자꾸 샘솟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시란 이러한가, 시를 누구 읽으라고 쓰는가, 시인이 젊은 넋한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란 무엇이고, 젊은 넋은 왜 시인한테 문예창작이라는 학문을 배우고 있는가 곱씹으면서 괴로웠습니다.
그 시인도, 또 다른 시인들도, 당신들 삶이 있었기에 시를 썼습니다. 당신들 발자국 묻어난 고향마을이 있고 고향사람이 있었기에 시를 엮어냈습니다. 당신들을 일깨운 책이 있고, 당신들을 이끌어 온 어른이 있었기에 시한테 사랑을 바쳤습니다. 당신들을 북돋우고 아끼며 기꺼이 읽어 준 낮은자리 사람들이 있었기에 시 하나로 밥벌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밥벌이가 끝나고 나면, 밥벌이가 어느 만큼 느긋하게 자리잡고 나면, 시는 어디로 가지요? 시는 어떻게 흐르지요? 시는 어떻게 뻗어나가지요?
..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올레이(아기 물개)의 향수병은 깊어만 갔어요. 엄마가 보고 싶었고, 바닷가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도 그리웠습니다. 올레이는 자꾸 눈물이 나서 먹을 수가 없었어요. 사육사 아저씨는 올레이를 달래 주려고 말을 걸기도 하고, 트럼펫으로 슬픈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어요 ..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