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질쿰 사막공사현장을 오가는 대형트럭
김준희
사막을 걷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더위와 햇볕이 아니다. 아무리 뜨거운 날씨라도 2시간 걷고 20-30분 쉬는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면 괜찮다. 진짜 문제는 쉴 곳이 없다는 점이다. 그늘도 없고 앉을 만한 장소도 적당하지 않다. 물을 마실 때도 태양을 등지고 선 채로 그냥 들이키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정처없이 걷다가 그늘을 발견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 그늘 아래에 앉거나 누울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은 커다란 트럭이거나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구조물이다. 하다못해 버려진 컨테이너 또는 공사중인 건물도 상관없다. 뭐든지 나한테는 아주 훌륭한 휴식처로 변한다.
오래 전에 육상 실크로드를 통과했던 상인들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궁금하다. 태양의 열기는 그때도 지금처럼 뜨거웠을테고 그늘은 지금보다 더 없었을 것이다. 낙타를 몰고 가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낙타가 만들어주는 그늘에 들어가서 쉬었을까.
또다른 어려운 점은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몇 킬로미터 앞에 잠잘 만한 곳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걸어야 한다. 이런 점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아무리 물과 식량을 챙기고 1인용 텐트도 있다고 하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무지는 인간을 병들게 한다던가. 그렇다면 사막에 대한 무지는 도보여행하는 인간을 골병들게 만든다. 뙤약볕 속에서 몸은 점점 지쳐가는데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채, 난파선의 선장이 된 심정으로 계속 걸어가야만 한다.
사막에서 만난 서양 관광객들뒤쪽에서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도로 한쪽에 멈춰선다. 뒷좌석의 창문이 밑으로 내려지면서 한 서양인이 나한테 말을 건다.
"어디 가는 거야?"나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궁극의 목표는 타쉬켄트지만, 오늘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 서양인은 차에 앉아서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도로를 건너서 그곳으로 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저 서양인은 분명히 나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나한테 와야지 왜 내가 저쪽으로 가야 하나. 안 그래도 걸어오느라 힘들고 지쳤는데. 자기는 편하게 승용차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손사래를 치고 계속 걸었다. 나에 대해서 궁금하면 당신이 이리 와라. 난 당신한테 궁금한 것도 없고 솔직히 대화를 하기도 귀찮을 만큼 지쳤다. 나는 묘하게 심술맞은 기분이 돼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차문이 열리더니 서양인 2명이 내려서 나에게 다가온다. 이들은 분명히 역사 도시 히바에서 부하라로 가는 관광객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힘들고 귀찮지만 성격좋은 내가 상대해줘야지 어쩌겠나.
"누쿠스에서 타쉬켄트까지 걸어가는 거야.""잠은 어디서 자고?""도로변에 있는 식당이나 현지인들 집에서.""사막에서 잔 적은 없어?""사막에서는 딱 하루만 잤어.""왜 이런 일을 하는 거야?""그냥 도보여행하는 중이야. 이 길이 고대의 실크로드니까."이들은 네덜란드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내 사진을 몇장 찍고나서 승용차로 돌아가며 말한다.
"꼭 성공하길 바랄게!"그래, 정말 고맙다. 나는 멀어져가는 승용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시 걸었다. 지루한 도보여행길에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라도 있으니 덜 심심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커다란 식당이 나온다. 시간은 오후 3시. 오늘도 비교적 일찍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큰 식당에 도착해서 맞이하는 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