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루니를 떠나서토르트쿨 가는 길
김준희
그런데 난데없이 재채기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연달아 재채기가 터지면서 콧물이 흐른다. 감기에 걸린 걸까. 이렇게 태양이 뜨거운데 감기는 아닐 것이다. 오래 전부터 완치되지 못했던 나의 지병 알레르기성 비염이 여기와서 도진 것이다. 코가 나의 약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꺼내서 배낭에 매달린 스테인테스 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계속 화장지를 뜯어서 코를 풀고 콧구멍을 틀어막으며 걸었다. 그래도 별다른 소용이 없다. 재채기는 끝없이 나오고, 줄줄 새는 수돗물처럼 콧물이 흐른다. 내 몸 속에 이렇게 많은 콧물이 있었단 말인가.
왜 갑자기 비염이 도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코가 어떤 요인으로 인해서 자극을 받은 건데,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이나 그럴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무자파르의 집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긴 했지만, 나한테 고양이 알레르기는 없다. 어제 퍼마신 보드카 때문에 코의 상태가 나빠졌거나 아니면 피로가 누적되면서 코가 약해졌을 수도 있다.
계속 재채기를 하고 코를 풀면서 걸어가는 이 외국인을 현지인들은 아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또다른 걱정거리가 생겨난다. 이 두루마리 화장지가 다 떨어지도록 토르트쿨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화장지를 다 쓰고 나서도 계속 콧물이 멈추지 않는다면?
걷다 보니까 별걱정을 다한다. 좋은 점도 한 가지 있다. 재채기가 반복 될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 내 몸의 이상 때문에 나 자신에게 생겨나는 분노다. 그 감정 덕분에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면서 기운이 생겨난다. 몸 상태가 안좋기 때문에 오히려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아이러니. 이거 하나는 정말 좋은 점이다.
걷는 도중 계속 쏟아지는 콧물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가장 많이 걱정했던 것도 나의 육체적 능력이었다. 한여름 국토종단에 나섰던 대학생들이 픽픽 쓰러진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사막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내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에 걱정이 더욱 가중되었다. 나의 의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나의 육체는 걷기를 거부하면 어떡하나. 육체가 의지를 배반하면 그것은 무엇의 문제일까. 허약한 육체의 잘못일까, 무모한 의지의 책임일까.
"생각이 육체를 지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육체가 마음을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 육체는 언제나 포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이 말을 한 사람이 미국의 조지 패튼 장군이었던가? 기억을 더듬지만 재채기가 터질 때마다 생각도 함께 날아가 버린다. 이 말은 물론 옳은 말이지만 그것도 몸의 상태가 어느 정도 이상일 때 가능한 얘기다. 피로가 누적되고 체력이 떨어져 가는데도 생각이 몸을 지배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안되겠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었다. 오전에만 족히 50번은 재채기를 한것 같다. 두루마리 화장지도 얄팍해져 있다. 어디 식당에 들어가서 뜨거운 차를 마시고 좀 자야겠다. 자고나면 피로도 풀리고 콧물과 재채기도 마법처럼 멎어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작정했다고 해서 식당에 곧장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적한 시골길에는 식당도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시선을 먼 곳에 고정시키고 걸었다. 지평선이 보이는 저 멀리 길가에 집 한 채가 나타나기를, 그래서 그 곳에 들어가서 잠 한숨 자고 일어날 수 있기를.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한참 걷다보니 식당이 나타난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짐을 한쪽에 놓고 평상으로 올라갔다. 뜨거운 차와 함께 커다란 우즈베키스탄 만두 2개를 먹고 평상에 누웠다. 나만의 휴식시간을 맞이하는 이 즐거운 기분.
식당에서 자고 일어나 다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