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교체시 새로 제작된 부재에 한해 원래부재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소화십삼년수보'(수리복원이 이뤄진 해)라는 인장(흰선 원안)을 찍어 표기했다.
수덕사 성보박물관 전시자료집
이번 전시에서는 소로, 헛첨자, 보아지, 첨자, 달이, 화반, 우미량 같은 낯선, 그러나 소리내어 음미해보면 정겹게 입에 붙는 건축용어들을 사진과 도면, 실제모습으로 볼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고려시대로의 여행을 안내하는 박물관의 기획력은 단순한 앎에서 끝나지 않도록 한다. 동경, 금동불감, 탑신, 금동보탑 등을 함께 전시해 유물 속에 담긴 고려건축 양식을 느끼도록 한다. 실증자료들을 통해 대웅전의 신비가 벗겨지는가 하면, 어느새 그 예술적 찬란함에 빠져들도록 전시물들을 배치해 놓은 것이다.
대웅전의 가치가 드러난 것은 얄궂게도 일제에 의해 진행된 해체 복원작업을 통해서다. 1937년부터 4년에 걸쳐 시행된 수리공사에서 건립연대, 고려시대의 벽화, 가구구조 등 대웅전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됐다.
전시회에서는 당시의 방대한 자료들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일제는 수덕사대웅전수리계획서의 수리방침에 따라 보수 전 조사 후 현황 파악, 수리방침 설계, 도면, 탁본, 명문사본, 서무와 회계 관련 규정, 인원 구성까지 놀라울 정도로 철저히 기록하고 보존해 놓았다. 심지어 내용 정리를 위해 거듭 실시한 보고서용 서류 교정본까지 모두 남겨 당시 대웅전 수리에 얼마나 정확성을 기하고자 했는지 가늠케 한다.
결국 근역성보관이 이번 전시회에서 함께 하고자 했던 ‘과거로의 여정’은 고려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이며, 마침내 현대에 이르러 역사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제가 70년 전 남긴 이 자료들은 현재 우리나라 건조물 수리의 지침서가 될 정도’라는 이야기를 뼈아프게 새기며 전시장을 나와 대웅전으로 오르면, 새삼 그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는 700년 역사가 푸근하게 맞아준다.
대웅전을 늘 밖에서만 봤다면, 법당 안으로 들어가 서까래와 부재들의 조각수법, 희미하게 남은 단청들을 하나 하나 둘러보자. 방금 전 전시회장에서 봤던 벽화 모사도를 되살리다 보면 고려의 화공들이 나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부처님에게 미안할 필요는 없다. 국교가 불교이던 시절, 백성들은 불심 가득한 마음으로 주춧돌을 놓고 뼈대를 올렸을 터이다. 건물을 둘러보고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부처님을 보는 것만 못할리 없잖은가.
그리고 밖으로 나와 700년 세월을 담은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면, 우리 선조들의 찬란한 문화가 벅찬 자부심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수덕사 대웅전 건립 700주년 기념전시가 비로소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건축학계와 불교계는 물론 우리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 전시는 지난 19일에 시작, 다음달 30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