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관 바다에서부터 만리장성이 시작된다. 왼쪽에는 청나라의 팔기군. 오른쪽에는 이자성의 반란군. 패잔병을 이끌고 퇴각한 명나라군 총사령관 오삼계는 바다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김광수
황도 북경이 이자성 군대의 수중에 떨어졌다. 오삼계는 패잔병을 이끌고 산해관으로 퇴각했다. 황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서쪽에는 이자성의 반란군, 동쪽에는 청나라의 팔기군, 고립무원이다. 독안에 든 쥐와 다름없었다.
"조건 없이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이자성이 우금성을 보내어 항복을 촉구했다. 오삼계도 싫지는 않았다. 이민족에게 항복하는 것보다 이자성에게 투항하여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하나의 방책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명제국 총관이 비적에게 항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삼계는 단호히 뿌리쳤다.
북경에 남겨둔 첩보원으로부터 긴급 보고가 날아왔다. 이자성 군대가 아버지를 잡아갔다는 것이다. 효심이 남달랐던 오삼계는 진중을 몰래 빠져 나왔다. 대장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부대는 무너진다. 심복 수하 몇 명을 데리고 북경으로 향했다. 아버지를 구출하고 항복 조건을 담판하기 위해서다.
여자를 빼앗아갔다는 말에 발길 돌린 오삼계척후로 내보낸 군졸이 황급히 돌아왔다. 이자성 군대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불길한 보고였다. 마음이 흔들렸다. '가야하나? 뒤돌아 서야하나?' 잠시 번민했으나 북경 행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외성 좌안문을 통과하여 내성으로 향하고 있을 때, 황성에 심어둔 세작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애첩 진원원을 이자성 휘하의 유종원이 취했다는 것이다. 오삼계는 치를 떨었다. 분노에 떨던 오삼계가 발길을 돌렸다. 이른바 충관일노위홍안(沖冠一怒爲紅顔)의 전말이다.
훗날 오삼계는 매국노라는 낙인이 찍혀 명나라 패망의 원흉이 되었다. 명나라의 국채를 사수해야할 장수가 이민족 만주족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청조(淸朝)에 반감을 품은 한족 지식인들 사이에 면면히 이어져 왔으나 청나라 패망 후, 한족 내부에서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명나라의 패망은 오삼계의 청나라 투항이 아니라 환관정치로 부패한 명나라 내부 붕괴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은폐하기 위한 희생물로 오삼계를 매도하여 만주족에게 나라를 빼앗긴 한족(漢族)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진원원은 남쪽에서 태어난 명기 출신이다. 숭정제의 총애를 받고 있던 전비(田妃)가 황제에게 어린 소녀를 넣어주고 환심을 사기 위하여 천거된 여자였다. 궁에 들어온 진원원은 빼어난 미모와 요기가 오히려 감점 요인이었다.
황제의 일일 성은을 입은 진원원은 황제의 옥체를 망칠 수 있다는 어의들의 진언에 따라 오삼계의 아버지에게 하사되었고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오삼계는 진원원을 끔찍이 총애했다. 그러한 애첩을 도적이 약탈해 갔다니 부글부글 끓었다. 산해관에 돌아온 오삼계는 청나라에 밀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