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미천 주변 '내끼' 마을
신풍리 길을 걷자니 한라산 상류에서부터 홀로 바다로 통하는 천미천을 옆에 끼고 걷게 되었지요. 천미천 주변에는 3개의 마을이 있습니다. 신풍리, 신천리, 하천리 마을이 바로 천미천을 따라 생겨난 마을입니다. 이 세 마을을 두고 '내끼'라 부르더군요. '내끼'란 '내의 끝 냇가'라는 뜻으로, 천미촌이라 부르기도 하구요. 즉, 세 개의 마을이 천미천을 끼고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점심을 먹고 신풍리를 지나 김영갑 갤러리에서 영혼의 올레길을 걸은 것뿐인데, 벌써 올레꾼들의 다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합니다. 추분이 지났으니 가을해는 벌써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평리에서 출발하여 얼마쯤 걸어왔는지, 앞으로 얼마를 더 걸어야 하는지, 그리고 도착지점인 당케포구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묻는 이가 없으니 속이 탔습니다. 하루에 22km를 걸어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왜 그리 마음이 약해지던지요. 도전의 올레길을 걸어보겠다고 자신과 약속해 놓고 이 무슨 엄살인지 생각해보니 우습더군요.
부자(夫子)가 걷는 아름다운 동행길
'새로운 마을을 지향한다'는 신풍리마을, 그 올레에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부자(夫子)가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동행이더군요. 50을 넘긴 아버지와 23살 아들이 함께 걷더군요. 아들에게 왜 걷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아버지와 그동안 못다 나눈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싶어서 올레에 참여 했습니다."
얼마 전에 군대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있다는 23살 청년과 연륜이 있어 보이는 아버지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쉼 없이 대화를 나누더군요. 아름다운 동행이 신풍리 올레 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더군요.
부자가 같이 걷는 올레꾼들은 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6살짜리 아들과 올레에 참가한 아빠,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제주시 백록초등학교)과 같이 걷는 아빠, 신풍리 올레 길은 부자간 대화와 사랑이 싹트는 길이었습니다.
'내끼' 사람들의 아름다운 속살을 보다
중산간 도로를 관통하니 신천리 올레입니다. 여름이면 자리돔으로 유명한 신천리는 농업과 어업이 주산입니다. 일주도로변의 아래로 땅이 기름지지 못한 신천리 사람들, 그들은 밭에서 백곡을 일궈내더군요.
추분이 지난 내끼마을 올레는 백곡을 거둬들이는 농부들이 길을 열었습니다. 콩을 따는 아낙, 참깨를 수확하는 농부, 돌담 위에 익어가는 수수와 누런 콩이 가을입니다. 해산물로 유명하다는 하천리에 접어드니 바다 냄새가 나더군요. 제주의 여느 마을이 그렇듯이 하천리는 대문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궁궐같은 집에도, 대궐 같은 집에도 대문이 없었습니다.
나는 '내끼' 올레를 걸으며 중산간 마을사람들의 속살을 보았습니다. 여름에 그을린 농부들의 까만 피부, 올레마다 곡식의 가득한 부자, 마음을 비우는 대문이 없는 속살 말입니다.
'내끼' 마을 사람들이야말로 날마다 올레 길을 걷고 있더군요. 올레는 그들의 피와 땀이 서린 삶이 터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제주올레 9코스 도보기행입니다. <제주의 소리>에도 연재됩니다
2008.10.09 09:1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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