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눈 내린 아파트 마당을 청소하고 있다.
윤대근
용역업체는 이 휴게시간을 다른 식으로도 악용했다. 황씨는 "휴게시간에 근무지를 이탈하지 못하게 하면서 경비들이 졸거나, 신문을 보는 등 딴 짓을 하면 이를 불성실로 트집 잡아서 계약 만료 전에 쫓아낸다"고 말했다.
"일부러 계약기간을 짧게 해서 4대 보험이라던가, 퇴직금·연차 등을 안 주려고 하는 거다. 1년이 지나면 명의를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계약 당시 맺었던 고용승계를 합법적으로 피해나가는 거다."아파트 경비만 10년을 한 오구환(60)씨도 '용역업체'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용역은 있어서는 안 될 업체다"고 말했다. 오씨는 경비직을 하면서 현장에서 경비들을 관리·감독하는 반장, 주임까지 경험해봤다. 주임을 맡았을 때 그는 업체로부터 멀쩡한 이를 자르기 위한 지시를 받았다.
"그 사람이 시말서를 쓰게 만들라고 하더라. 속으로 끙끙 앓았다. 시키는 것을 하지 않으면 잘리는 식이다. 자리 이동시키고, 눈치 주고 자진해서 그만두게끔 만드는 이들이다."용역업체의 '착취' 외에도 인간적인 모멸감도 함께 경험했다. 감단직 업무와는 상관없는 화단정리, 음식물쓰레기통 세척, 제설작업뿐만 아니라 전단 돌리기, 장 본 것 들어다 주기 등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황씨는 "아파트 주민 한 사람이 자식과 같이 가다가, 아이에게 '너 말 안 들으면 저 경비 아저씨처럼 된다'고 말했다"며 "경비를 사람으로 안 보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그래도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노동은 '아파트 경비'였다. 이 시대 고령노동자에게 허락된 일은 너무나 적었다.
김호연씨는 "우리 같은 나이에 힘 그리 크게 들이지 않아도 되는 단순라인작업도 할 수 있을 듯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최근 직장에서 퇴직하고 구직활동 중인 곽형탁(61)씨는 "찾아간 자리마다 젊은이들이 다 있었다"며 "나라에서 좀 (우리를) 배려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황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요소요소 투입이 되면 좋지만 현재 우리 상황에 맞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나, 이력서 들고 가면 읽지도 않고 안 된다는 말부터 나온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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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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