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스 아우레아 공원옛 궁전 유적에서 한가하게 산책을 할 수 있다.
노시경
나는 언덕의 더 높은 쪽으로 걸었다. 이 언덕에는 티투스(Titus) 목욕장과 트라야누스(Trajanus) 목욕장의 유적이 남아 있고, 그 아래에 도무스 아우레아의 유적이 있었다. 이 도무스 아우레아 유적은 로마가 멸망하고도 세월이 한참 흐른 15세기 말에 발굴된 유적이다.
안타깝게도 궁전의 옛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네로 황제가 궁전을 지으면서 시민들의 사유지를 무단으로 몰수하였고, 이에 대한 반감으로 네로 이후의 황제들이 궁전 건물 자리에 거대한 공중 목욕장을 지어 시민들에게 기증한 것이다.
폭군 네로와 자신이 다르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네로의 흔적을 지운 것이다. 네로도 그 화려했던 궁전을 제대로 즐기지는 못하였고, 후일의 여행자들도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옛 궁전의 실내공간은 버려진 동굴 같은 모습이었다. 이 안에 벽화와 실내장식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데, 이 실내장식 양식은 16세기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기둥이나 벽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데에 모방되었다. 궁전 내부의 그로토(Grotto, 동굴) 같은 유적에 남은 벽화와 회반죽 장식은 라파엘로(Raffaello)와 그 제자들에 의해 그로테스크 풍 미술로 발전되었다.
무너진 유적의 곳곳에 남은 섬세한 프레스코 벽화가 네로의 예술적 취향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그는 독재자였지만 건축 속의 아름다운 미술을 음미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를 감탄하게 만드는 것은 유적지에 화려하게 남은 장식물들이 아니었다. 공원 입구에서 보잘 것 없이 허물어져 가는 아주 조그마한 벽돌 건물이었다. 2천 년 전 유적의 벽돌 하나라도 행여 무너질까봐 고이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로마의 빛나는 다른 유적에 비해 정말 하찮아 보이는 무너진 건물 더미지만 이들은 작은 유적 하나하나에도 온갖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많은 건물이 허물어져서 궁전 터는 황량하기만 하다. 당시 궁전은 도시 한복판에서 전원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대규모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많은 나무가 들어찬 공원의 모습이 평화스럽기만 하다.
도무스 아우레아의 언덕에 펼쳐져 있었다는 로마제국 당시의 현관, 정원, 분수대, 호수가 현재 내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웅장한 기둥의 복도가 현관을 이루고 찬란하게 도금된 높이 35m의 네로 황제 동상을 상상해 보았다.
네로는 이 거대한 도무스 아우레아를 건설하면서 국가재정을 낭비했고, 국가재정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통화 개혁까지 단행할 정도였다. 네로 황제는 궁전의 건설 이후 계속 파행적인 행동들을 일삼으면서 로마제국을 혼란에 빠트렸다.
나는 화려함이 사라진 공원에서 한가하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네로황제 사망 이후 콜로세움 옆의 공원으로만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도무스 아우레아의 흔적들을 보고 싶었다. 나는 궁전 건물은 사라졌지만 당시 넓은 궁전 안을 장식하던 유물들은 로마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