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은 어디에맑은 날에도 안쪽은 어둡기 마련인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형광등 불빛에 기댑니다. 이 형광등 불빛은 책꽂이 아래쪽까지 밝게 비추지 못합니다. 내 눈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형광등과 가까운 쪽은 너무 밝게 찍힐 수 있고, 형광등과 먼 쪽은 어둡게 나올 수 있습니다.
최종규
[61] 사진 한 장과 100장 : 집안에 마련한 뜰을 사진으로 찍어서 엮은 책을 봅니다. 사진 한 장으로 한 곳을 보여줍니다. 사진 한 장으로 집안에 꾸민 뜰이 다 다름을 보여줍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다가 책을 덮습니다. 아무래도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비로소 사진 10장으로든 100장으로든 보여줄 수 있지 싶습니다. 한 장으로 보여줄 수 없으면 100장이 아닌 1000장으로도 무엇이 무엇이며,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지 못하겠구나 싶고, 사진을 보는 우리들도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62] 사진을 아무리 많이 찍어도 : 사진을 아무리 많이 찍어도 사진을 볼 줄 모르면 늘 제자리걸음이기 일쑤입니다. 사진을 아무리 잘 찍어도 사진을 느낄 줄 모르면 팔굽혀펴기만 잘하는 셈이겠지요.
자기가 찍어 놓고도 자기 사진 가운데 좋은 사진이 있음을 볼 줄 모른다면, 좋은 사진을 키우는 쪽이 아니라 좋지 못한 사진을 키우는 쪽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가 참으로 잘 찍은 사진인데도 무엇을 어떻게 잘 찍었는지 느끼지 못한다면, 한두 장 기막힌 사진은 있을지라도 사진책 한 권으로 묶을 만한 훌륭한 사진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맙니다.
[63] 책 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내 '헌책방 사진' : 날이 갈수록 헌책방을 찾아가는 책손이 줄어들기 때문일까요? 요즘은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을 때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찾는 사람' 모습을 담기가 몹시 어렵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헌책방 사진을 찍던 때를 떠올려 보면, 그때는 마음을 졸이며 도둑 사진을 곧잘 찍었는데, 요새는 아무리 큰마음먹고 있어도 도둑 사진 찍기 어렵습니다.
책을 조용하게 찾으면서 즐기는 분들에게 껄끄러움이나 번거로움을 느끼게 하지 않으면서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 하다 보니 늘 도둑사진을 찍는 셈인데, 도둑사진이 아니라 '미리 말하고 찍는 사진'을 찍고 싶어도, 책손 만나기가 어려워요. 널리 알려진 여러 헌책방에는 늘 사람이 얼만큼 있고 북적거리기도 해서, 이런 곳에서는 '사람 있는 헌책방 사진'을 곧잘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있는 헌책방 사진이 요 몇 군데에 몰리곤 해요. 서울 시내 곳곳, 전국 곳곳에 있는 모든 헌책방에 이처럼 책손이 있다면 좋을 텐데, 훨씬 더 많은 헌책방에서는 '사람 없는 풍경 사진'을 찍을밖에 없기 일쑤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헌책방 책손이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억지로 사람 있는 모습을 찍으려 할 일이 아니라, 지금은 줄어들고 만 책손 모습,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책만 있는 모습을 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