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악길 십자로를 횡단중인 클라이머들. 십자로는 남성적이라고 표현되는 인수봉의 대표적 이미지다(책속 사진 설명)
손재식
바윗길을 처음 만든 사람들 이야기하지만 김정명은 백명순이 자주 가리키던 십자로를 지나 횡단 길을 지나던 중 바위길 내는 것을 그만둔다. 그녀의 빈자리를 끝내 이겨낼 수 없었던 것. 이후 원준길, 이인희 등에 의해 1970년 5월 말에 검악길이 마무리된다. 그녀가 떠난 지 꼭 1년 만의 일이다.
인수봉의 수많은 바위길 중 하나인 검악길은 이렇게 열리지만, 김정명은 결국 1971년에 산을 영영 떠나버린다. 그리고 이민을 떠나고 만다. 그런 김정명이 20년도 훌쩍 넘은 어느 날 귀국하여 자신의 젊은 날 사랑이 아로 새겨진 검악길을 등반한다. 저자와 함께.
<한국 바위열전>은 한국의 대표적인 바위인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에 바윗길을 처음 만든 사람들 이야기다. 저자는 그들과 함께 한국산악운동의 중심이 되어 온 그 현장, 인수봉 25곳 바윗길들과 도봉산 14곳을 오르며 그 길만의 오롯한 사연들을 들려준다.
김정명과 백명순의 사랑이 아로새겨진 검악길뿐일까? <한국 바위열전>에서 만나는 길마다 산악인들의 도전과 개척, 집념과 열정, 사랑, 우정 등이 스며있다. 그들이 피투성이 손등과 깨진 손발톱으로 깎아지른 바위들을 조금씩 나아가며 열어놓은 그 바윗길들마다.
1987년 에베레스트 동계 등반 후 매년 히말라야 등반과 트레킹을 하고 있는 산악인인 저자의 경험들이 더해져 이야기들은 훨씬 생생하다. 또한 자연과 산을 소재로 몇 차례의 사진전을 연 사진가이기도 한 저자의 현장에서만 담을 수 있는 사진들이 아찔할 정도다.
산은 좋아하나 등산은커녕 암벽 등반은 꿈도 못 꾸는 내게는 흥미와 긴장, 아찔함이 범벅된 책읽기였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주먹을 꼭 쥐고 있을 정도였다. 책을 통해 한국 등반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암벽 등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목숨까지 위험한 암벽등반, 그들은 왜 바위에 죽고 사는가?' 이렇듯 평소 궁금하기 짝이 없던, 암벽 등반 중 목숨을 잃은 사고 소식을 접하며 더러는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던, 내게 '바위에 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한국 바위열전>에 소개되고 있는 길들은 39곳. 등반에 큰 도움이 될 등반 요령, 주의할 점, 그 길만의 '등반 길잡이'와 '등반 지도' 등을 덧붙여 놓았는데 마디마다 거리, 코스별 성격 등을 세심하게 적어 놓았다.
바윗길 위치, 형태, 등반 거리, 총 마디, 최고 난이도, 주요 장비, 소요 시간 등 등반에 필요한 사전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180여 개 바윗길 길잡이 도표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암벽 등반에 필요한 부록이 많아 산악인들에게는 단비 같은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