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의 콜비츠 사진(좌)과 1920년에 그린 팔을 괸 자화상(우)
케테 콜비츠
마침내 행동하는 작가로그녀는 사실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부르주아 계급의 안락함을 누리며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분과 계급이 다름에도 노동자와 농민의 아픔을 내 것같이 절절히 느끼면서 안타까운 감정을 일기장에 써내려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녀에게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마침내 케테를 행동하는 작가로 이끈다.
1893년, 케테는 운명적으로 하우프트만의 연극 <직조공들>을 보게 된다. 민중에 대한 연민으로 감화돼 있던 케테가 이 작품을 만난 것은 사실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단지 미술을 공부한 자선병원장의 아내일 뿐이던 케테를 마침내 한사람의 예술가로 일으켜 세웠다. 이 연극을 보고 케테는 강한 영감을 얻었고 앞서 본, 자신의 출세작으로 꼽히는 <직조공 봉기>를 작업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하우프트만의 극과 많이 다르다. 케테의 작품은 직조공들의 투쟁에 작품의 중심을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테 콜비츠 평전을 쓴 카테리네 크라머가 이렇게 얘기했을 정도다.
"하우프트만이 행동하는 프롤레타리아를 무대 위에 올린 최초의 작가였다면, 케테 콜비츠는 조형예술분야에서 계급투쟁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개척자에 해당한다." 특징적인 것은, 작품 속 그 어디에도 억압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직조공들의 실존과 삶, 투쟁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계급투쟁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고, 당시 자본가의 악랄함과 직조공들의 분노를 처절히 느낄 수 있게 한다.
나아가 그녀의 작품은 계급투쟁과 노동자들의 분노 표출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여섯장의 작품은 그 다음의 역사를 예견하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은 비극적으로 죽음을 당한 자와 남겨진 자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 주는 등 슬픔의 정서가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은 어둠을 강조하는 동시에 가느다란 희망을 나타낸다. 순간의 패배가 간결하게 패배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이 연작은 사회의 진보 세력을 표현하고, 여기에 맞는 단순하고 명료한 사실주의 형식을 발굴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사실주의적'인 것은 주제와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그녀가 단순히 귀족들을 위한 그림이 아닌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자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예술가들에게 케테 콜비츠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틀리에 예술은 실패한 예술이다. 일반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반 관객을 위한 예술이 평이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소박하고 참된 예술을 알아본다는 것이다."케테가 '판화'를 선택한 이유는?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판화작업'을 즐겨 했던 것 같다. 처음 그녀는 유화작업을 하였으나 그녀의 교수인 칼 스타우퍼 베른을 통해 동판 부식법을 배우고, 클링거의 상징주의 판화를 보면서 유화를 버리고 판화로 작업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나아가 케테는 색채라는 것이 심미적인 유희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검정색, 회색, 백색을 통해 인간의 아픔과 슬픔, 어둠을 표출해 내는 판화야말로 예술을 대중화시킬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판화는 미술의 귀족 성향을 제거해주는 장르, 즉 유일성이라는 신화를 부수고 다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복제예술이다. 복제라는 의미는 또 곧 민중의 대열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특정인에 의한 독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미술의 민주화와도 연결된다.
기법이나 표현력의 내재적 의미보다는 현실에 참여할 '힘'이 필요했던 케테에게 판화는 여러모로 궁합이 맞는 예술이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추상에서 사실주의로, 회화에서 복제성과 선동성이 강한 판화(수백장의 그림을 동시에 노동자들의 눈앞에서 보여주고 손안에 쥐어줄 수 있는 것은 당시엔 판화밖에 없었다)로 나아갔는지 모를 일이다.
판화기법의 탁월성으로 19세기 말에 케테는 이미 명성을 떨쳤다. 케테는 자신의 작업모토를 이렇게 규정했다.
"나는 이 시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내 작품의 목적으로 생각한다."그래서일까. 그녀의 그림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주의적인 자세를 허물고 남을 위한 존재로서 협력, 연대, 원조로 나서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케테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현실에 눈을 돌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회 문제들을 작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힘있는 자들이 휘두르는 횡포를 고발하고, 사회 약자들이 당하는 삶의 고통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