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리(Bob Marley)
밥 말리
사진 속 남자의 헤어스타일은 우리에게 레게 머리로 잘 알려진 드레드록(dreadlock)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의 이 남자가 손에 들고 피는 것은 다름 아닌 마리화나.
'이런 분위기 왠지 익숙하다. 그렇지! 이 사람은 뮤지션일거야'라고 추측한 사람이 있다면 꽤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우선은 당신의 추측이 맞았다. '그럼 그렇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원래 머리가 길고 요란하잖아. 이 레게머리를 봐. 게다가 마리화나는 음악인들이 자주 애용하잖아'라고 추측의 나래를 펴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그만! 뮤지션까지는 맞았지만 그 이후의 추측은 완전히 틀렸다.
사진 속의 뮤지션 '밥 말리'(Bob Marley)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우리에게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레게 음악의 '전설'로 불린다. 그리고 그가 드레드록 헤어스타일로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는 것은 그에게는 성스러운 '종교의식'이다. 이 종교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의 고향인 자메이카 얘기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군 대위와 자메이카 흑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밥 말리쿠바에서 남서쪽으로 145km 부근에 위치한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자메이카.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이 나라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머지 17세기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다.
자메이카를 손에 넣은 영국의 백인들은 그 곳에서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했는데 기존에 이 땅의 주인이던 인디오들은 백인들이 험하게 부려서 거의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노예로 대규모로 데려왔다.
졸지에 이역만리로 이주하게 된 흑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달래기 위해 고향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다. 이러한 노예들의 애환이 서린 자메이카 토속음악이 1950년대에 미국으로부터 전해진 '리듬 앤 블루스'와 만나면서 '레게' 음악이 탄생했다.
1945년 영국군 대위와 자메이카 흑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밥 말리는 어쩌면 이러한 레게음악을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 없이 태어났고 아버지에 대해 알지도 못합니다. 어머니는 나를 학교에 보내려고 일주일에 겨우 20실링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 나는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교육을 받았다면 아마도 멍청한 바보가 되었겠지요"식민 잔재와 인종 차별, 그리고 가난이라는 모순을 한 몸에 안고 태어난 밥 말리는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 슬럼가인 '트렌치타운'에서 축구와 음악에 푹 빠진 소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열다섯 살 때부터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구성해 음악활동을 시작한 밥 말리는 당시에 흑인들의 해방 사상을 담은 신흥종교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드레드록과 마리화나는 내 인생!라스타파리아니즘은 기독교와 아프리카의 토속 신앙이 결합된 신비적 요소가 가득한 종교다.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1892~1975)를 구세주의 재래로 여기는 이 종교는 노예로 강제 이주된 흑인들이 다시 아프리카로 회귀해야 한다는 운동과 맞물리면서 강력한 대중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이 종교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신체 훼손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자신의 긴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드레드록(dreadlock)이라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간자'라고 부르는 마리화나를 피움으로써 영적인 고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밥 말리에게 있어서 드레드록과 마리화나는 자신이 믿는 라스타파리아니즘에 대한 엄숙한 제사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고 레게 음악은 바로 그러한 자신의 종교 신념을 담아서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도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