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시카고>는 재즈에 대한 당시 미국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재즈와 술'은 미국을 타락으로 몰아넣는 '사회 문제'로 인식되었다.
The Chicago L.P.
'국적' 때문에 수모를 겪은 음악재즈에 담긴 인종적 함의나 '미국에서 온 음악'이라는 사실도 음악의 '품격'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 재즈의 또 다른 문제는 귀보다 몸으로 듣는 음악이라는 데 있었다. 재즈의 원류인 '딕시랜드 재즈(Dixieland Jazz)'부터 1930~1940년대의 '스윙(Swing)'까지, 재즈는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기 좋은 음악이었다. 물론 혼자 흔들었다면 별 탈 없었을 것이나, 걸핏하면 외간 여자나 외간 남자를 끌어들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류 역사가 입증하듯, 사람들은 무엇이든 교제의 수단과 변명거리로 사용하는 법이다. 돌(보석)이 그랬고, 음식과 술이 그랬으며, 자동차(그 전에는 마차), 공연장(특히 커튼 달린 박스석), 영화관 등 그 어느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재즈가 마련해 준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리하여 재즈는 남녀의 신체를 매개하는 '죄악의 음악'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은 연합군뿐 아니라 재즈와도 싸워야 했다. 괴벨스는 재즈를 '하류 인간의 예술'로 규정하면서 척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독일 치하의 여러 나라에서 재즈가 금지되었으며, 벨기에에서는 '재즈'라는 단어를 간판에 쓰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그러나 전쟁 중 수난을 겪었던 음악은 비단 재즈만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베토벤과 바흐 등의 연주가 금지되었고, 공공도서관은 그들의 음반을 폐기하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추었다. 그 작곡가들이 '독일 국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음악뿐 아니라 모든 예술에게 있어 전쟁은 가장 큰 적이다. 예술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정신을 드러내지만, 전쟁은 인간의 삶을 '생존'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지위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야만의 터에 예술을 위한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연주가 '한미관계=운명' 비유? 선무당 한국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