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방빼야지?인사하자!
박봄이
배추도사 집 현관이 열리며 등장하시는 음주가무 패밀리 나영준 기자님! 그의 등 뒤로 흘러 타고 넘치는 후광은 착시가 아니었단 말이지!
예상치 못한 지원군의 등장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배추도사! 꼬냥이는 금방이라도 안구에서 쓰나미라도 뿜어낼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영준 기자님을 바라보며 외쳤다.
"어흑, 오빠! 할아버지가 도배 장판비로 20만원 내놓으래. 어흐흑!"그 때의 모양새를 되짚어보자면 말이다. 마치 동네 노는 삼촌에게 아껴 먹던 막대 사탕을 뜯기기 직전에 그 삼촌의 엄마를 만나 그의 만행을 꼰지르는 코찔찔이 애 같은 모양새였다고나 할까. 물론 그 삼촌은 백수짓 하며 어린애 사탕이나 빼앗아 먹는다며 즈그 엄마한테 등짝이 터지도록 얻어맞았겠지.
배 째, 등 따!"드러누울까요? 예? 영감님, 해도 해도 너무하네. 제가 그냥 여기서 드러누워요? 예?"오오오! 어차피 마지막, 그간 배추도사의 만행을 귀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나영준 기자님은 마지막까지 날강도짓을 서슴지 않는 배추도사로 인해 드디어 칼을 빼들고 전투모드에 돌입하셨다.
"이 총각이 왜이려! 고깟 20만원 내는 게 뭐가 어때서?""아, 그깟 20만원이 별 거 아니면 영감님이 내라고요! 꼴랑 보증금 그거 얼마 된다고 그걸 뜯어먹어요? 양심이 없어도 정도껏 이어야지!“원래 배추도사가 남자에겐 무지 약하다. 젊은 남자가 배 까고 드러누워 버리는데 그간의 서슬 퍼런 배추도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더라는 말이지. 역시 영감, 꼬냥이는 만만했던 게다.
"아니…내가 꼭 내라는 건 아니고, 이사 들어올 총각이 새로 도배를 해달라는데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조금 내주면 어떻겠느냐는 말이었지…."얼씨구! 당신과 나 사이에 있을 정이라곤 코묻은 월세로 얽혀진 정 말고 뭐가 있던가. 혈기왕성 젊은 총각의 들이댐에 바로 급비굴해지는 배추도사. 이럴 거면 차라리 칼을 뽑질 말던가.
"그래서 뭡니까, 달라는 거에요, 말라는 거에요?""아, 됐어! 그거 얼마 한다고 그냥 내가 기분좋게 보내줄 테니까. 어서 짐 싸서 나가!"이미 파무침처럼 잡쳐버린 기분, 뭘 기분좋게 보내준다는 말인지. 아무튼, 뱉어버린 말, 주워담기 전에 어서 철수하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에 후다닥 짐을 싸고 도망치듯 이삿짐 차에 몸을 실었다.
안녕, 세렝게티!"이봐! 이봐!"이삿짐 차의 시동이 부르릉 걸리고 바이 바이 인사할 겨를도 없이 출발을 하려는데 뒤따라 황급히 뛰어나오는 배추도사.
"저 주인 영감 왜 저런대요?""아저씨, 튀어요! 튀어!""튀…튀어? 오호라, 오케이!"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대강 감이 잡힌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선 안절부절 삿대질을 해대는 배추도사.
나름 꼬냥이의 소심한 복수랄까?
이삿짐을 싸면서 도저히 무겁고 쓸모없어서 버리려던 물건을 욕실 구석에 한가득 쌓아놓은 것 정도? 그리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삭고 쪼그라든 냉동실의 음식을 치우지 않은 것 정도? 또 싱크대 문짝이 고장나서 내려앉고 욕실 등이 깨진 것을 신고하지 않은 정도?후후, 그간 당한 설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상큼한 복수 아니던가.
과연 이 복수 중에 무엇을 발견하고 저리 따라나와 동동 질을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이미 떠난 몸. 반 푼어치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세렝게티 옥탑을 떠났다.
물론 앞으로 살게 될 집의 집주인은 또 어떤 기괴함으로 꼬낭이를 당황하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극악 공포 배추도사를 겪고 난 후이기에 그 누굴 만나도 이보단 나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