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댕이의 걱정미안, 누나 이제 똘똘하게 살께.
박봄이
매너남 미쿡이의 배신!연휴기간이 끝나가는 2월 9일 토요일, 이사 가기 이틀 전. 미쿡이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예, 이사 준비 잘 되세요? 짐이 별로 없으시다고 했죠?""아… 음… 노숙좌님, 음… 제가 하는 말 오해 말코 들으세요.""예?"음… 보증금 준비가 안 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 써준 미쿡이에게 고마워 별말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음… 나 다시 미쿡가야돼요.""예????""캅자기 연락 받았어욜. 다음 주에 미쿡 들어가요. 나 이사 못가요.""…!!!!!!!!!"아… 정수리 부근에서 감전된 것처럼 무언가 찌릿- 하고 터졌다. 머리가 핑 돌면서 온몸의 기운이 손끝으로 빠져나가는 기분.
"미안해욜, 나도 이럴 줄 몰랐어요. 그래서 가켸약금은 안 돌려 받을케요."그건 당연한 거거든, 자식아.
무슨 내 인생이 시트콤도 아니고 이런 드라마에서도 안 우려먹을 씨알도 안 먹힐 일이 난데없이 들이닥치느냐는 말이지. 뭐라 말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꼬냥이 성격이 또 안 되는 일에는 토를 안 단다는 거. 어차피 못 오게 됐다는 사람에게 중얼거려본들 무슨 소용 있으리.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전화를 끊고 침대에 쓰러졌다.
오늘이 이사 이틀 전 구정 연휴기간에 토요일. 내일은 일요일, 난 월요일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사를 가야 하는데 과연 오늘과 내일 사이에 집을 보고 바로 계약할 사람이 나타날 확률은?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이건 뭐 죽으라는 거잖아!
모든 걸 포기한채 증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또 꼬냥이가 위기에 강한 인간형 아닌가. 타지 생활 10년에 이보다 더 어이없는 일도 겪었거늘 이 정도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이럴 때만 불끈 솟아오르는 오기!
침착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가장 먼저 배추도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미우나 고우나 집주인이고 아무리 얄짤 없어도 어른은 어른, 이런 상황에서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거 참, 사람이 뭐 그려. 연휴동안 아무 말 없더니 이제 와서 그게 뭔 난리여. 거기 집보러 오는 사람들한테 보증금 얼마 안 하니께, 계약할 때 완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찾아봐. 줄 선 사람 많다니 아마 한둘은 가능할거여. 그럼 색시도 바로 받아갈 수 있잖여. 젊은 사람들 많을겨, 알아봐."음! 뭔가 크게 해결해준 건 아니지만 적어도 꼬냥이의 걱정을 해주는 '척'하는 배추도사에게 0.7%의 고마움이 느껴졌다.
일단 블랙카피 한잔 찐하게 마시며 수습할 방법을 생각하기로 했다.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와 찬 바람을 쐬며 바라본 내 몫의 하늘. 꼬냥이 어깨 위에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곤두박질 쳐 내려앉았으니 세상사 쉬운 일 없다지만 꼬이려니 이렇게도 꼬이는구나 싶더군. 그래, 언제 쉬운 일이 있었던가. 이번 일을 마무리 짓고 나면 그만큼 나도 자라겠지.
십이지장 끝부터 심호흡 한번 크게 올려주고 오기와 기운을 급상승시킨 꼬냥이!!! 4시간 동안의 작업 끝에 결국 그날 밤 9시, 까까머리 총각과 계약에 성공했다. 물론 보증금 완불로.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거야.
간다! 간다! 젠장! 이제 정말 갈 거라고!
그리고 이사 당일.
예상은 했지만 배추도사라는 큰 산은 꼬냥이를 호락호락 놔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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