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다시마철을 앞두고 금일읍 주민들이 모였다(제6회 다시마축제모습)
김준
금일읍 평일도는 고려시대 장흥군 관산면에 소속되었다 고금진(1621), 거문진(1890)으로 이속되었다. 그 후 1896년 평일면이 설치되어 새로 만들어진 완도군에 소속되었다. 1914년 읍면통합으로 금당면, 생일면을 포함해 금일면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80년 금일읍으로 승격된 후 금당면과 생일면이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일읍은 평일도(1821가구) 외에 충도(80), 소랑도(56), 신도(16), 다랑도(15), 원도(9), 황제도(8), 우도(7), 장도(7), 섭도(5) 등이 10여 개의 유인도가 있다.
평일도라는 명칭은 개도 이래 외침을 받지 않는 '평화로운 섬'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금일지역은 행정구역으로는 완도군에 속하지만 고금, 약산, 생일과 함께 장흥생활권이다. 특히 최근 장흥군 마량-고금-약산이 다리로 연결되어 약산 당목항과 금일 일정항을 연결하는 항로가 편리해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장흥읍지>(1747)에 '주위가 80여 리, 평탄하고 넓으며 토질이 좋다. 8개의 큰 마을이 있으며 장흥부의 모든 선박과 진상용 해물들이 이 섬에서 나온다'고 평일도를 소개하고 있다.
장흥출신 존재 위백규(1727-1798)는 <금당도선유기>(1791)에 평일도 포구에서 잠녀들이 물질해 전복을 따는 모습을 '벌거벗은 몸을 박 하나에 의지하고 깊은 물 속을 자맥질했다. 마치 개구리가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가고 물오리가 물속에서 헤엄쳐 나오는 형상이라,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여름철이 되어 날씨가 맑고 화창한데도 오히려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는 데, 하물며 눈에 쌓이고 몹시 추운데도 관리들은 채취를 독촉하며 채찍질로 유혈이 낭자한데서야'라고 적고 있다. 지금도 사동리, 동송리, 동백리에는 제주에서 출가한 해녀와 지방해녀들이 모두 10여 명 물질을 하여 자연산 전복과 소라를 채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