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파리. 권총과 곤봉, 무기와 칼을 든 흥분한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왕의 군대에 맞서고 있다. 신성하다고 느껴질 만큼 빛이 나는 포연 앞에서 자유의 여신은 소년을 데리고 소총과 삼색기를 들고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짓밟는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시체들을 넘어 전진한다.
그림의 전경에는 시민봉기자, 왕당파 양쪽 진영의 희생자들이 쓰러져 있다. 죽은 사람 옆에는 삼색기 색상의 옷을 입은 안 샤를로트(억압된 프랑스를 의미)가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 앞에 서있는 저돌적인 여인의 형상이 마치 자신을 다시 소생시키고 있는 것처럼, 그 여인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 여인의 형상은 자유와 공화제를 의인화한 인물인 마리안이다. 그녀의 가슴은 호전적인 아마존족 여인의 가슴처럼 노출되어 있으며, 양손에는 각각 총과 삼색기를 들고 있다.
이 작품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대로 1830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혁명'을 묘사한 그림이다.
여기에서 두드러지게 묘사되고 있는 대상은 노동자와 거리의 젊은이들이다. 왕의 군대는 그림의 앞쪽에 찢어진 상의에 군모도 없이 죽은 채로 묘사되어 있다. 들라크루아는 혁명의 주체가 누구였는가를 그림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때의 파리는 폐지되었다고 믿었던 압제의 구체제(앙시앙 레짐, 1789년 프랑스혁명 전의 절대왕정)가 부활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번져가고 있었다. 혁명 당시 처형되었던 루이 16세의 동생인 루이 18세가 1814년 망명지로부터 소환되어 나폴레옹 몰락 이후 프랑스를 다스리게 되었던 것이다.
한 폭의 그림이 지니는 힘은?1824년 루이 18세가 사망하자, 삼형제 중 막내인 샤를 10세가 랑스에서 중세의 화려한 형식으로 즉위식을 거행함으로써 프랑스 왕위에 올랐다. 그는 귀족들에게 옛날 칭호와 특권을 되돌려주고, 혁명중 잃은 재산에 대한 보상으로 그들에게 10억 프랑을 수여하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1830년 7월 25일 샤를 10세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의회를 해산하고, 대다수의 시민들에게서 선거권을 박탈하는 등 독재적 행위를 단행하자, 민중의 분노는 더이상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1830년 7월 28일. 민중들이 일어섰다. 우리는 이때 상황이 어떠했을지 그림과 글을 통해 상상할 수밖에 없다.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는 '영국 단장(斷章)-1830년 11월'에서 '7월혁명'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 파리의 위대한 1주간! 거기서 불어오기 시작한 자유에의 용기는 물론 도처에서 침실 등불을 넘어뜨렸고,그리하여 몇몇 왕좌의 붉은 커튼이 화염에 휩싸이고, 금빛 왕관이 활활 타오르는 취침용 모자 밑에서 달아올랐다. 그러나 옛 추적자들은 금방 소화용(消火用) 양동이를 끌어오고,이젠 더 주의깊게 염탐하고 다닌다
아마도 이날의 파리의 풍경은 이러했을 것이다. 샤를 10세의 용병들이 좁은 골목길에 총을 쏘며 길을 내는 동안, 시민들은 창문에서 가구와 빨래통, 기왓장과 연장통 등을 내던졌을 것이다. 또 용병들 다리 사이로 우마차에 가득 실은 멜론을 쏟아붓기도 했을 터이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는 시민들의 것이었다. 1830년 8월 3일 샤를 10세는 퇴위했고 도망치듯 망명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급진적 자코뱅파의 일원으로 활동한 '다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