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타이지.심양 북능공원에 있는 홍타이지 동상.
이정근
범문정은 영민한 사람이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사람이다. 청 태조 누르하치 때부터 청나라의 정치를 요리한 범문정은 황제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신하들이 새로운 정책으로 우왕좌왕 하고 있으면 "범장경이 알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네, 범장경이 동의했습니다."
이 한 마디면 더 이상 묻지를 않았다. 무사통과다. 범문정은 황제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범문정이 최명길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범문정 40세, 최명길 51세. 두 사람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래도 아니 될 말이오. 세자 환국문제는 다시는 입 밖에 꺼내지 마시오."범문정은 선을 그었다. 청나라의 대 조선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없다는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공의 뜻을 가상히 여겨 선물을 주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먼 길 마다하지 않고 예까지 온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야 없지를 않소. 단 세자 환국문제는 없었던 일로 하고 군대는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어김없이 보내야 하오."범문정이 선언했다. 최명길이 들고 온 조선의 요구를 하나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최명길의 완패였다. 청나라의 전략은 치밀했다. 세자 환국을 거절하고 군대 파병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뇌물사건을 거론하지 않았다.
동관으로 돌아온 최명길은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하나도 건지지 못한 참패에 병이 난 것이다. 하지만 범문정이 제시한 선물 보따리가 있다. 어쩌면 그 보따리를 손에 넣기 위하여 병이 난 척 하는지도 모른다. 최명길이 심양에서 병이 났다는 소식을 접한 인조는 급히 어의를 심양에 파견했다.
세자관에도 의관이 있다. 최명길이 자리에 누웠다는 소식에 깜작 놀란 소현세자는 의관 유달이를 보냈으나 동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청나라는 사신과 세자관의 접촉을 엄격히 통제했다.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조체재를 유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포로를 데리고 먼저 돌아가라최명길이 동관에 누워 농성 아닌 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이 범문정이 선물을 보내왔다. 조선인 포로 780명을 석방하겠다는 것이다. 예상 외의 큰 선물이었다. 범문정의 통보를 받은 최명길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부사와 서장관을 불렀다.
"나의 쾌차가 더딜 것 같으니 속환인들을 데리고 먼저 귀국하시오.""당치않은 말씀입니다. 편찮으신 영상대감을 여기에 두고 어찌 우리만 귀국할 수 있단 말입니까?""아닙니다. 포로에서 풀려난 속환인들은 한시 바삐 조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고 고국에는 그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마른 심정을 내 병환 때문에 지체할 수 없습니다. 속히 떠날 채비를 하시오."단호한 명령이었다. 부사와 서장관은 부랴부랴 귀국을 서둘렀다. 8백여 명 가까운 포로를 인솔해가는 일 또한 만만찮은 일이다. 식량을 준비하랴, 의약품을 챙기랴,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신명이 났다. 빈손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는데 속환인들을 데리고 들어가게 되었으니 자신들이 공을 세운 것처럼 기뻤다.
당시 사대부들은 사신과 그 일행에 임명되면 갖은 구실을 붙여 청나라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앗차 실수하면 볼모로 붙잡혀 있거나 죽음의 길로 받아들였다. 김경여는 임금이 서장관으로 재수했으나 그는 끝내 관직에 나오지 않았다.
부사와 서장관이 속환인을 데리고 심양을 떠나는 날 최명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냥 병을 핑계대고 심양에 눌러 앉았다. 범문정으로부터 더 받아낼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