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률. 명나라의 홍무제가 당률을 기반으로 제정한 법률. 조선은 명나라의 법률을 들여와 그대로 시행했다. 사형에도 교형, 참형, 능지처사가 있는 무서운 법률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정근
청나라는 조선에서 사신이 오면 동관에 묵게 하고 세자관과의 접촉을 차단했다. 최명길은 망설였다. 고칠까? 말 것인가? 옥새가 찍힌 주문(奏文)을 고치는 것은 국서 변조다. 대명률에 의하여 처단될 수 있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국서변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변조된 국서를 가지고 내가 역적질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국가와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못할 바도 아니지 않은가.'최명길은 결심했다. 주문을 펼친 최명길은 인열왕후 대상 부분을 빼고 임금의 환후를 집어 넣었다. 국서를 변조한 최명길은 압록강을 건넜다. 심양에 도착한 최명길은 동관에 들었다. 세자관에 사람을 보내 심양의 사정을 알아보고 싶었으나 청나라는 철저하게 차단했다.
최명길은 황궁으로 황제를 알현했다. 홍타이지도 정중하게 맞이했다. 주문을 올리고 선물을 풀어놨다. 황제는 뇌물사건에 대하여 한 마디 말이 없었다. 세자 환국에 대한 주청도 언급이 없었다. 그야말로 요식적인 외교 행위였다. 황궁에서 돌아와 동관에 대기하고 있는 최명길에게 호출령이 떨어졌다. 예부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최명길을 부른 사람은 범문정이었다.
"대 청국과 조선은 형제의 나라가 아니오. 군신의 나라란 말이오. 그 사실을 잊었소?""군신의 예로 받들어 모시고 있습니다."청나라의 전략가 범문정과 조선의 전술가 최명길이 기싸움을 벌였으나 승패는 이미 예견된 싸움이었다. 청나라는 상국이라는 우월적 지위에 있고 조선은 항복한 나라다. 범문정은 황제의 스승이라는 별칭이 붙으리만큼 홍타이지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고 최명길은 아직 대명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임금과 신하들에 포위된 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