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작은 책이지만, 이 작은 책에 담긴 튼튼한 알맹이를 좀더 많은 사람들이 맛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화
(1) 날씨와 공무원과 내 몸
무르익은 봄을 알리는 비가 오는가 싶더니, 봄비가 아닌 겨울비 같은 찬비가 내렸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걸맞는 따뜻한 봄비가 아니었습니다. 따뜻함을 싹 가시게 하는 찬비였습니다. 그렇게 제법 긴 날이 흐른 뒤 밤새 짙은 안개가 끼더니 날이 살며시 포근해집니다.
.. 이와 같은 기후의 변화에 의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농업, 입업, 어업이다. 농작물이나 수목의 생육은 그 토지 고유의 기상 조건에 의해 크게 좌우되며, 또한 어패류의 생식도 바다의 온도가 조금만 변화해도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17쪽)지난겨울을 생각하면,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함이 오래도록 이어지다가 갑자기 한 번 온도가 뚝 떨어지더니, 그 뒤로는 두 달 가까이 날씨가 한 번도 풀리지 않는 꽁꽁겨울이었습니다.
이 겨울이 풀리는가 싶더니 보름 만에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조금 더웁기까지 했습니다. 봄이란 없이 곧바로 여름이 다가오느냐 싶다가, 굵은 비 몇 차례 들은 뒤 어느 만큼 알맞은 날씨로 자리잡습니다.
선뜻 여름 들머리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날씨입니다만, 집에서는 거미와 바퀴와 모기가 깨어납니다. 파리도 바깥에서 날아듭니다. 들새는 들새대로 어린 새끼를 치면서 먹이를 찾느라 바쁩니다. 도서관이나 집에 앉아 있으면서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끼새 가냘픈 소리가 들려옵니다.
봄꽃은 골목길마다 활짝활짝 피어납니다. 벌써 져 버린 꽃이 있고,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이 있으며, 막 피어나려는 꽃이 있습니다. 이제 비로소 따뜻함을 물씬 느끼면서 사는 새날이구나 하며 한숨을 돌릴 즈음인데, 이러다가 들이닥친 차가운 비에다가, 모진 바람에다가, 쿵쾅쿵쾅 울리는 벼락이라니.
.. 중국, 인도를 비롯해서 발전도상국이 모두 미국과 같은 대량의 화석 연료를 사용한다고 하면 심각한 사태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전도상국에 대해서 화석 연료의 사용을 늘리지 말라고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선진공업국이 화석 연료의 소비를 대폭으로 줄이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 (71∼72쪽)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겨울옷을 찾아서 입습니다. 벗었던 속속옷도 다시 입습니다. 옷장에 집어넣었던 두꺼운 겉옷도 꺼내어 입으십니다. 저는 반바지차림 그대로 돌아다닙니다. ‘배다리 산업도로 무효화’ 집회터에도 반바지차림으로 갑니다. 새벽부터 비바람을 옴팡 뒤집어씁니다. 낮이 되자 골이 띵합니다. 집회터에 더 버티고 서 있기 어렵다고 느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 시간 반쯤 누워서 쉽니다.
두 시 오십 분쯤 일어나 동구청으로 갑니다. 동구청에서 인천시 도로건설과 공무원과 종건본부장들이 찾아와서 주민과 만나는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토론자리를 마련하면서 시공사한테 ‘공사중단’ 지시를 내리지 않아서 주민들은 집회터에 그대로 비바람 맞으면서 있다고 합니다.
네 시 반쯤 되어서야 금창동사무소로 옮겨서 토론자리를 엽니다. 긴소매 웃옷을 걸치고 동사무소로 찾아갑니다. 시에서 일하는 높은자리 공무원 분들은 말씀을 아낍니다. 주민들이 조목조목 따지는 이야기를 듣고도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스터디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인천시 공무원)는 원칙을 지킵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합니다. 주민들이 ‘그 원칙이라는 게 뭔가요?’ 하고 물으니, ‘공사를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하고 대답해 줍니다. 그리고 ‘이미 보상비가 들어갔기에 도로부지를 다르게 쓸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
‘인천시 스스로도 이 길을 놓아야 할 까닭(타당성)이 없음을 깨달았으면서도 왜 정치를 펼쳐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느냐’고 주민들이 묻습니다. 이 말에는 ‘그렇게 되면 인천시 다른 곳하고 형평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우리 집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연수동은 왕복 12차선이지만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여기에서만 통학에 문제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주민들이 거의 한목소리로 ‘고등학생하고 초등학생이 같습니까. 산업도로를 놓으려는 이곳에는 초등학교가 네 군데나 직접 붙어 있습니다. 이 길이 왕복 6차선으로 줄인 길이라고 하시는데, 폭이 50미터가 넘습니다. 이 길을 초등학생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하고 소리높여 따집니다. 인천시에서 나온 높은자리 공무원은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