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골마루비오는 날에는 바닥에 상자를 깔아서 빗물이 튀지 않도록, 책이 빗물에 다치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이런 날에도 터벅터벅 신발 빗물 튀기도록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종규
우리가 헌책방에 책을 내다 팔려고 한다면, 먼저 ‘내가 아끼는 책’이어야 합니다. ‘내가 곁에 놓고서 사랑해 주고 고이 쓰다듬어 주는 책’이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이 아끼는 책을 여러 차례 잘 곱씹고 받아들여서 ‘내 것’으로 삼았기에, 이제는 나 아닌 다른 사람 품으로 옮겨가서 그 사람한테도 좋은 느낌과 생각을 듬뿍 건네어 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일이 ‘헌책방에 책 팔기’입니다.
그리고 헌책방 일꾼은 이렇게 내다 팔려는 책에 알맞춤한 값을 치릅니다. 제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는 책이라 해도, 자기가 사들이고 나서 며칠 안 되어 모두 팔아치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꽂아 놓으면 금세 팔아치울 수 있다고 하는 《아리랑》이나 《토지》 같은 책이라 해도, 인연이 안 닿으면 한 달이고 석 달이고, 한 해고 두 해고 먼지만 먹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일제하 민족언론사론》이나 《김교신 전집》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팔리지는 않습니다. 눈밝은 책손한테 팔려나가자면 그만큼 헌책방 책시렁에서 짧지 않은 세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에서 사들여 주는 책값은, ‘책방 달삯과 책방 살림돈과 책방 일꾼 일삯’까지 더한 값을 헤아려서 매기게 됩니다. 책 팔러 온 분한테 500원 값을 치르며 사들인 헌책이면, 책손한테는 2000원이나 3000원에 팔 수 있고, 책 팔러 온 분한테 1000원 값을 치르며 사들인 헌책이면, 책손한테는 3000원이나 4000원에 팔 수 있습니다. 책 팔러 온 분한테 3000원을 치러 주며 사들인 헌책이라면, 책손한테는 6000원이나 7000원을 받아야 할 테지요.
그러니, 올해에 나온 책을 헌책방에 판다고 했을 때 이 책에 찍힌 책값이 1만 원이라 해도, 이 책을 헌책방에서 팔 수 있는 값을 헤아리자면, 이 책을 파는 분이 받을 수 있는 몫이란 1000원이나 2000원입니다. 이 책이 ‘나중에 새로운 책임자를 만나 되읽힐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책이라 할 때에만.
(2) 사진과 역사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입니다. 자전거를 끌고 책방에 옵니다. 비 들이치지 않는 자리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책 구경을 합니다. 비옷은 탁탁 털어서 바깥에 걸어 놓습니다.
안으로 들어와 꾸벅 인사를 하고, 언제나처럼 〈책나라〉 아저씨 푸념을 듣습니다. 아저씨는 푸념을 할밖에 없습니다. 이곳 〈책나라〉도 대학교 앞에 자리한 책방인데, 수천 사람이 들락거리는 저 큼직한 경희대학교 학생 가운데 몇 사람쯤 책방 나들이를 하느냐 이 말이지요. 학교는 우람할 만큼 크지만, 정작 그 대학교 앞에 무슨 책방이 있느냐 말입지요. 다른 대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술집과 옷집이 대학교에서 그토록 장사가 잘되고, 책방은 하나같이 죽을 쑤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언제부터 대학교육을 이렇게 내팽개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느 날부터 대학생 얼과 넋이 이리도 한쪽으로 치우치도록 내몰고 있습니까.
놀이도 알맞춤하고, 공부도 알맞춤하고, 세상 헤아림도 알맞춤하고, 마음닦기도 알맞춤하고, 사랑도 알맞춤하고, 알바도 알맞춤하고, 그렇게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스려 나가야 할 대학생이 아닐는지요.
씁쓸하게 웃으며 푸념을 듣다가, 분도출판사에서 펴냈던 ‘사진말’ 흩어진 몇 권을 봅니다. 앞엣권 1권과 2권과 3권이 빠진 여섯 권이 보입니다.
(4)《사진말 2-몸의 표현》(분도출판사,1984) (5)《사진말 2-오늘을 사는 복음 2》(분도출판사,1984) (6)《사진말 2-오늘을 사는 복음 3》(분도출판사,1984) (7)《사진말 2-어제와 오늘》(분도출판사,1984) (8)《사진말 2-미래는 오늘이다》(분도출판사,1984) (9)《사진말 2-평화》(분도출판사,1984)모두 아홉 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딱 한 번, 이 《사진말》 한 묶음을 본 적이 있을 뿐, 짝이 다 맞는 판으로는 본 일이 없습니다. ‘바오로딸’ 책방에 이 녀석이 있으면 새책으로라도 사겠건만.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면서 사회를 읽고 세상을 돌아보도록 이끌던 교재가 《사진말》입니다. 이 《사진말》에는 최민식님 작품이 제법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