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리.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지점부터 의주까지 1000 리. 부산 동래까지 1000 리. 한반도의 중앙이다. 녹번동 구 국립보건원 앞에 세워져 있다.
이정근
한씨는 시끌벅적한 정자를 피해 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를 들이켰다. 마른 목을 축여주는 물맛이 시원했다. 병아리가 물마시고 하늘을 쳐다보듯이 고개를 들었다. 한성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어미를 애타게 찾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정자로 돌아서려는데 비석이 보였다. 양천리(兩千里)라 새겨진 비석이었다.
“의주에서 천리. 여기에서 부산까지 천리. 그래서 양천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동네가 바로 여기구나.”한씨는 양천리라 새겨진 비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의주에서 여기까지 천리. 결코 가깝지 않은 길이었다. 어떻게 걸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양에서 압록강까지는 그래도 발걸음이 무겁지 않은 길이었다. 지옥 같은 오랑캐의 땅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조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무거웠다. 끌려갈 때보다도 더 멀게만 느껴지는 길이었다. 아버지가 곁에 없었으면 청천강에 풍덩하거나 다른 길로 새버리고 여기까지 오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같은 지아비가 어떻게 받아줄까?”삼천리 금수강산의 정 중앙에 서있는 비석처럼 가운데에 서 있고 싶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이 자리에 서있고 싶었다.
“애야, 날이 저물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한다. 어서 길을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