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문.환향녀 문제로 논쟁이 일었던 창경궁 정문이다.
이정근
장유의 상소는 환향녀(還鄕女)의 논쟁에 불을 지폈다.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아들 장선징을 새장가 들게 하겠다는 것이다. 장유의 며느리는 이번 집단 송환 이전에 돌아왔다. 부잣집 친정에서 비밀리에 거금을 주고 빼왔으나 시집에 들지 못하고 친정에 있었다.
"사로잡혀 갔다 돌아온 사족의 부녀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김경징의 아들 진표는 그의 아내 정씨를 다그쳐 자진하게 하고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적병이 이미 성 가까이 왔으니 죽지 않으면 욕을 볼 것입니다'라고 말하여 그의 할머니 영의정 김류의 아내 유씨와 어머니 박씨 그리고 할아버지의 첩 신씨, 아버지의 첩 권씨가 같은 날에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그때 김경징과 장신의 어머니가 모두 성 안에 있었는데 두 사람이 모두 자기 어머니를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그 어머니가 마침내 적중에서 죽은 것입니다. 진표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죽게 하고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진표가 할머니와 어머니를 '다그쳐 죽게 하였다'고 매도하는데 그것은 김경징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가 쌓여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어머니와 아내의 절개까지 아울러 깎아 내리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의 아내 정씨는 정백창의 딸입니다. 친정의 혈통을 보더라도 남에게 닥달을 받아 죽을 사람은 더욱 아닙니다."논쟁이 엉뚱한 곳으로 비화했다. 강화도 함락의 책임을 물어 처단한 김경징의 유령이 살아 돌아온 느낌이었다.
"부녀자들이 붙잡혀 간 것은 그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임금이 항복하고 나라가 힘이 없어서였습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나라에서 따뜻하게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송죽은 엄동설한에 빛나고 국화는 서릿발아래서 꽃을 피웁니다"이정귀의 아내 권씨, 여이징의 아내 한씨, 서평군 서준겸의 딸이며 김반의 아내 서씨, 이소한의 아내 김씨, 한흥일의 아내 강씨, 한준겸의 첩 최씨, 이호민의 첩 한씨가 모두 자결하였습니다. 그 밖에 부인들이 절개를 위하여 죽은 것은 모두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적에게 사로잡혀 욕을 보지 않으려고 죽은 자의 혼령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임진왜란 때 사대부의 부녀들이 적진에 잡혀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자를 시댁에서 이혼하고 개취(改娶)할 것을 청하니 조정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았다. 선왕이 하교하기를, '이것은 음탕한 행동으로 절개를 잃은 것이 아니니 버려서는 안 된다'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선조(先朝)에서 정한 규례에 따라 시행하라."
인조가 소방수 역할을 하고 나섰다.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자들의 영혼도 받들어 주어야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도 숨통을 터 주어야 합니다. 끌려갔다 돌아온 그들도 다 우리의 딸들입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자결하기를 바라지는 않지 않습니까? 사천에서 목욕하고 도성에 들어오는 사람은 모든 것을 사(赦) 하는 것으로 간주했으면 좋겠습니다."사천은 오늘날의 홍재천이다. 도성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개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동예의지국입니다. 이호선의 아내 한씨는 토굴 안에 숨어 있었는데 적병이 불을 질러도 나오지 않고 타 죽었습니다. 심정함의 아내 박씨도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고 최필의 아내 정씨, 이중언의 아내 양씨, 황식의 아내 구씨, 이사성의 아내 이씨, 하함의 아내 이씨. 김계문의 아내 박씨가 절개를 지키려고 죽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헛되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조선의 여인들, 누가 지켜 주어야 하는가? 여론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안 된다는 것이다. 명분은 동방예의지국이었고 뿌리는 성리학이었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자들의 정조 파절(破節)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 상황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슬람권에서 간음한 여자를 가족이 죽이는 '명예살인'이 있듯이 자녀목(恣女木)과 도모지(塗貌紙)가 상존하고 있던 나라가 조선이다. 뿐만 아니라 자녀안(姿女案)은 국가에서 관리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여자를 스스로 죽도록 유도하여 목을 매게 하는 나무가 자녀목이다. 물에 젖은 한지를 얼굴에 발라 질식사 시키는 것이 도모지다. 자녀안은 품행이 바르지 않거나 3번 이상 결혼한 여자의 행적을 기록한 대장이다. 자녀안에 오르면 그 가문의 불명예는 물론 배우자의 승진과 자손의 과거시험에도 불이익을 받았다.
여자의 정조는 곧 예와 직결되었고 여자의 품행일탈은 사헌부의 단속 대상 풍속사범이었으며 범죄였다. 가부장제 나라 조선은 부녀자들의 풍속 문란을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대부들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자들이 절개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청나라에 끌려가 성적 노리개가 된 여인은 물론 심양에 끌려갔으나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킨 여인들마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훼절 범주에 넣고 싶은 것이 조선의 사대부들이었다. 조선의 여인들. 누가 지켜 주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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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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