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과 바람이 주신 천일염, 첫 생산을 앞두고 준비 중이다.
김준
작은 소금알갱이는 소금밭을 배회하다 지쳐 가라앉는다. 어떤 이는 바다를 향한 꿈의 좌절이 만들어낸 눈물이라 했다.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그러나 소금은 지난 40년 동안 철과 구리와 같은 광물이었다.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걸 배추와 섞어 김치를 만들고 오뉴월에 잡은 새우와 섞어 새우젓을 만들었다.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들이다. 맛의 기본이다. 누가 이를 불법식품이라 할 것인가. 법이 그랬다. 늘 법과 현실은 이렇게 괴리되었다.
1907년 인천 주안에서 처음으로 염전을 조성해 천일염 생산에 성공했다. 그 뒤 소래(현 인천시 논현동)와 군자(현 시흥시 정왕동)에 일제강점기 염전이 조성되었다. 1940년대 후반 서남해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염소와 나트륨을 제외한 것들은 모두 불순물로 생각했다. 천일염의 염화나트륨 순도는 80%대로 나머지는 칼슘·마그네슘·칼륨 등 미네랄이다. 이러한 미네랄이 체내에 들어와 하는 역할을 모르던 시기였기에 이를 '불순물'이라 여겼다.
먹는 소금에 불순물이 섞여 있으니 식품이 아니라 '광물'이라 여겼다. 그리고 무려 100년 만에 광물로 규정한 관련법('염관리법')이 개정되었다. 그리하여 식품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25일 동안 햇볕과 바람으로 만드는 소금다행스럽게 3월 28일 천일염이 다시 태어났다. 섬마을에서 소금을 거두고, 청계천에서 자랑스럽게 식품으로 다시 태어남을 선언했다. 이 날을 기념해 전남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에서는 천일염 식품탄생을 기념한 작은 의식을 가졌다. '채렴식'이라는 이 의식은 사실 몇 년 전까지 염전에서 늘 행하던 의례였다.
좋은 소금을 많이 내게 해달고, 소금밭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소금밭에 저수지에 수문에 밥을 놓고 술잔을 올리기도 했다. 고기잡이 어부들이 풍어를 기원하듯 지내는 소금 고사였다. 이튿날 서울 청계천에서도 뜻 깊은 행사가 있었다. 천일염 명품을 기원하는 축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