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떠난 집터를 일궈 씨고구마를 심었다.
김준
부서진 돌담과 구들장, 색이 바랜 흙벽 너머에 텃밭이 있다. 밀짚모자를 쓴 할머니는 날이 좁은 호미를 들고 이랑을 만들었다. 그 사이 고구마가 줄지어 누워 흙과 물을 기다린다. 할머니의 모습은 평화롭고 행복하다.
새벽바람을 가르며 세 시간을 달려 막 떠나려는 배를 간신히 잡아탔다. 이 배 놓치면 꼼짝없이 오후 늦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점심때가 되려면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 하지만 배꼽시계는 이미 점심시간을 넘겼다. 식당이 없는 섬 마을을 배회하다 텃밭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활짝 웃으며 반기는 모습이 오늘 점심은 해결할 것 같다.
"할머니 이 섬에는 식당 없어요?" 인기척을 했다. 사실 '할머니 밥 좀 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어쩌까 여그는 식당이 없어. 삼거리 슈퍼에 가서 물어봐 거기서는 밥도 해주기도 해." 더 반가운 말이 이어졌다. "밥 안 해준다고 하면, 우리 집으로 와. 식은밥이라도 먹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