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컬렉터>링컨 라임 시리즈 1편
노블하우스
링컨 라임이 쓴 현장감식 교과서의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범인은 항상 범죄현장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둔다는 이야기다.
그 흔적의 종류는 여러가지다. 어설픈 범인은 자신의 신분을 알려줄 결정적인 단서를 흘려두기도 한다. 운전면허증이나 신용카드 영수증 또는 큼직한 지문 여러개 등.
지능적인 범인들은 그런 단서 대신에 아주 미미한 흔적을 남긴다. 구두에 묻혀온 흙이나 모래, 옷에서 떨어진 섬유 몇 가닥 또는 아침에 뿌리고 나온 향수의 향기 등. 첨단장비를 동원하지 않으면 식별이 불가능한 흔적들이다. 이런 미량 증거물을 가지고 어떻게 범인을 추적할까?
미국작가 제프리 디버가 창조한 인물 링컨 라임은 이런 증거물을 추적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링컨 라임은 범인을 추적하는 단서로 오직 증거만을 믿는다.
그는 탐문수사 또는 증인이나 목격자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링 기법에도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링컨 라임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범죄현장에 남아있는 증거물 뿐이다.
이것은 링컨 라임이 수사관이기 이전에 뛰어난 과학자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링컨 라임이 활동하는 장소는 미국의 뉴욕이다. 링컨 라임은 뉴욕의 역사와 지질, 식물분포, 생물학적 환경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지식을 이용해서 증거물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범죄현장에서 독특한 흙이나 미량의 가루가 발견된다고 해보자. 링컨 라임은 그 흙이 뉴욕의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 볼수 있는 것인지 대번에 알아차린다. 미량의 가루역시 마찬가지다. 그 가루의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서 현미경은 물론이고 가스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기 등의 첨단장비를 동원한다.
증거물을 분석해서 범인을 추적하는 링컨 라임
그렇게 분석된 결과를 가지고 링컨 라임은 범인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이다. 범인이 어느 장소에서 이런 증거물을 옷에 묻혀가지고 왔는지, 범인이 사는 곳은 어떤 지역인지, 범인이 무슨 직업에 종사하고, 어떤 사람들과 자주 접촉하는지 등등.
증거물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링컨 라임은 범죄현장의 보존을 가장 우선시한다. 범죄현장이 타인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현장감식반이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자신의 부하를 해고해 버리기도 한다. 링컨 라임에게 있어서 증거물은 '범죄수사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열정과 재능 때문에 링컨 라임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뉴욕시경 과학수사국장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열정이 그에게는 오히려 독이었을까. 링컨 라임은 지하철공사장에서 현장감식을 하다가 그만 화를 당하고 만다. 공사장 대들보가 무너지면서 링컨 라임을 덮친 것이다. 링컨 라임은 척추뼈 중에서 제4경추가 박살나는 중상을 입는다.
그 사고 이후에 링컨 라임은 전신마비환자가 되었다. 전뉴욕을 누비고 다니면서 범죄현장을 조사하고 부하들을 통솔하던 인물이 졸지에 침대에 누워서 시쳇말로 똥오줌 못가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링컨 라임의 몸이 전부 마비된 것은 아니다. 머리와 목, 어깨는 움직일 수 있다. 어깨 아래로는 왼손 약지만이 살아있다. 큰 부상을 당했지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니까 침대에 누워서도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증거물을 분석하고 추론하는데에는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인 <본 컬렉터>에서 링컨 라임은 이런 상태로 등장한다. 작가인 제프리 디버도 참 극단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사고를 당한 이후로 링컨 라임은 이혼했고, 뉴욕시경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은퇴했다. 사고에 대한 보상으로 3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았고, 장애연금도 받는다. 금전적으로는 별 어려움이 없다.
링컨 라임에게 어려운 점은 바로 무료함과 무력감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컵하나도 들어올리지 못한다. 얼굴이 간지러울 때 긁지도 못한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시간이 가기 만을 기다린다. 링컨 라임은 과거를 회상하고 자살을 꿈꾸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죽일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사고 이후에 전신이 마비된 링컨 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