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탑보.요동에서 심양 가는 길목에 있다.
이정근
요동을 점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동을 점령했더라면 대륙의 판세는 달라졌을까? 원나라와 명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던 힘의 공백기를 틈타 무주공산 요동을 일시적으로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대륙을 제패한 명나라가 요동 정벌을 용인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불용이면 전쟁이다. 관건은 고려가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역사를 상고해보면 달이 차면 기울듯이 어느 나라, 어느 제국을 막론하고 부흥기가 있는가하면 쇠퇴기가 있지 않았는가. 대 제국을 건설했던 원나라는 북으로 밀리고 있었고 명나라는 불꽃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고려는 무신들이 권력에 탐닉했고 불교는 타락하여 민심 이반이 일어나고 있었다. 고려 초라면 가능했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쇠퇴기에 들어간 고려는 전쟁수행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겠지.
공민왕이 주둔군에게 군수품을 공급해주지 않아 군사를 돌린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성계할아버지는 명나라의 대륙 패권을 예견했던 것이다. 판단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다. 피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숙명이다. 그 때와 지금이 너무나 흡사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부왕은 어떠한가?”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소현은 마루턱에 흩어져 있는 돌을 주어 만져 보았다. 조국의 돌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말 못하는 돌이지만 그 때 이곳을 지나던 군사들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아우 봉림대군의 모습이 보였다.
"게서 뭐하고 있는거냐?"
"네, 저하. 고국에 계신 전하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갸륵하구나. 그런데 손에 쥔 것은 무엇이냐?"
"아바마마를 생각하다보니 시상이 떠올라 적어 두었습니다."
"내가 보아도 괞찮겠느냐?"
"네, 저하."
봉림대군은 손에 쥐고 있던 지편(紙片)을 소현에게 넘겨주었다.
청석령(靑石嶺) 디나거냐 초하구(草河溝) 어드매오호풍(胡風)도 차도 찰샤 구즌 비는 므스일고뉘라셔 내 행색(行色) 그려 내야 님 겨신 듸 드릴고.- <봉림대군. 해동가요>청나라에 끌려가는 조선 왕자의 서글픈 심정을 읊은 시였다.
"너의 비통한 마음을 알겠다만 아바마마께서 우리의 모습을 그림으로나마 보시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 하시겠느냐?"
"망극하옵니다. 저하."
"시종관들에게 보이지 말고 품속에 고이 간직해 두도록 하라."
"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자일행을 시종하는 신하들이 세자와 대군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여 고국으로 떠나는 시종 연락관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한성에서 의주까지의 기록은 돌아가는 승지 허계 편에 보냈다. 심양에 도착하면 압록강에서 심양까지의 여정을 기록으로 작성하여 보내야 한다. 그들의 손에 봉림대군의 시가 부왕에 전달되면 가슴 아파 하실 것 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