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의 판사석에서 바라본 법정의 모습. 우측 아래에는 배심원석(그 맞은 편에는 증인석)과 검사석(그 맞은 편에는 변호인과 피고인석)이 있다
박근용
다음으로 재판장이 배심원 8번을 해임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인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재판장이 배심원의 상태를 틈틈이 파악했거나 주변에서 이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8번 배심원이 졸았던 시점은 검사와 변호인이 증인신문을 하던 때였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을 설득하여 검사 또는 변호인측의 말을 믿게 만드는 방식이다. 따라서 검사와 변호인은 배심원의 상태를 계속 주시하면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배심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도 못하게 말해서도 안 되고, 배심원들과 상관없이 자기 구상대로만 재판을 진행해서도 안 된다. 말하는 속도, 법정에서의 자세 모두 배심원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변호인은 이 점에서 잠깐 허점을 보였다. 2시 55분경 4번째 증인에 대한 변호인의 신문이 시작되었지만, 변호인은 배심원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증인석에 앉은 증인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그것도 변호인석 책상위에 올려둔 두꺼운 서류뭉치(사전에 준비한 질문이 적힌 자료 등)를 쳐다보면서.
따라서 변호인은 8번 배심원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배심원들이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없었다. 자기가 증인에게 묻는 질문을 배심원들도 이해하고 있는지, 증인이 답한 내용에 대해 배심원들이 제대로 듣고 이해했는지 알 수 없는 자세였다.
재판장이 직접 8번 배심원이 조는 모습을 목격해서 해임했는지, 아니면 법원의 다른 관계자가 재판장에게 알려주어서 해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배심원의 상태를 관찰하는 법원관계자 또는 재판장이 있었기에 불성실한 배심원을 가려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그 과정도 바람직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판사는 물론이거니와 검사와 변호인도 배심원이 자기 말을 제대로 잘 듣고 있는지 계속 신경쓰길 기대한다.
물론 배심원을 평의에 참여하는 숫자보다 적게는 1명, 많게는 5명까지 더 뽑아두는 예비배심원 제도가 불상사를 막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셈이기도 하다.
52명의 후보자중 8명이 배심원으로 뽑혀
이날 재판에는 앞서 말한대로 8명의 시민이 배심원석에 앉았다.
법원에서는 애초 8명을 뽑기위해 인천지법 관할 지역 거주민에게 주민등록표를 근거로 무작위로 뽑은 180명에게 통지서를 보냈는데, 우편주소 잘못 등으로 통지서가 배달되지 못한 경우가 49명 있어, 배심원후보자 출석통지서를 받은 사람은 131명이었다. 그리고 이들 131명중 실제 이날 오전 9시 30분까지 법원에 나온 사람은 52명이었다. 이는 39.7%의 출석률이다. 앞선 재판 사례들보다 약간 높은 출석율인데, 기대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이들 52명중 무작위로 8명을 일단 뽑아 배심원석에 앉히고 검사와 변호인이 이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해서, 편견이 있다고 보는 사람 등을 기피신청하였다. 검사와 변호인이 이유를 제시하면서 기피신청한 사람은 각각 3명과 5명,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기피신청한 사람은 각각 4명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유를 제시한 '이유부 기피신청'의 경우 재판부가 받아들인 경우는 검찰측 신청 1명 뿐이었다고 한다(검사와 변호인측이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기피신청하는 경우는 무조건 배심원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종 선정된 8명의 배심원단은 남성이 4명, 여성이 4명이었고, 20대와 30대가 각각 3명, 40대가 2명이었다. 직업도 회사원·주부·일용직노동자·대학원생·공무원·치위생사·자영업자 등 다양했다고 한다. 8번 배심원이 해임되었으니, 평의에 참석한 7명의 배심원은 남성 4명, 여성 3명이고, 연령대는 20대 2명, 30대 3명, 40대 2명이 된 셈이다.
이날 재판에서 증인신문 과정에서 배심원들이 추가 질문을 한 경우는 한 차례였다. 유력한 증인인 A씨가 사건 당시 술을 먹고 누워있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 부분은 증인이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보았는지 여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대목이었다.
이날은 재판부도 상당히 여러 차례 추가 질문을 하였다. 피해자도 술을 먹고 있었는지, 피해자의 형부에게 피의자가 병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사과했는지 등 증인신문이 끝날 때마다 질문을 많이 했으며, 이는 배심원들의 사건 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본다.
핵심 증인 1명에 대한 변호인의 집중 추궁오전 9시 30분부터 11시까지는 배심원 선정절차가 진행되었고, 12시까지는 선정된 배심원단과 피고인이 출석한 상태에서 배심원에 대한 안내와 사건의 쟁점과 공소사실 설명, 검사측과 변호인측의 입증계획 설명 등의 절차가 진행되었다.
이날 재판에서 다룬 사건은 피고인이 한 방에서 술을 나눠먹고 이야기하던 피해자와 언쟁을 벌이다 피해자를 발로 밀어(또는 차서) 뒤로 넘어지게 해 머리가 벽에 부딪히게 했고, 그 후 얼마되지 않아 병원으로 후송된 피해자가 결국 의식을 잃고 죽게 했다고 검사와 증인 A씨가 주장하는 사건이었다.
따라서 증인으로는 같은 방의 한쪽 구석에서 자다가 깨워 이 장면을 목격한 A씨와 피고인을 최초로 수사한 경찰관, 피해자의 형부, A씨의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해 병원으로 피해자를 후송한 119 구급대원이었다.
▲증인석에서 바라본 8명의 배심원석 모습. 증인석과 배심원석까지의 거리가 6미터쯤 된다
박근용
오후 1시부터 진행된 이들에 대한 증인신문은 오후 3시 17분경 모두 마쳤다.
모두 4명의 증인에 대한 신문인데, 그중 1시간 20분 정도가 유일한 목격자인 증인 A씨에 대한 신문에 사용되었다. 검사는 A씨에게 20분 정도 질문을 했지만, 피고인의 범죄의 유력한 증거인 증인 A씨의 증언의 신빙성을 깨뜨리기 위해 변호인은 1시간 가량 집중 추궁했다.
오후 3시 28분부터 시작한 검사와 변호인의 측의 증거물 조사와 증거설명은 오후 3시 55분경 끝났고, 피고인 신문은 오후 3시 57분부터 4시 16분까지 약 20분 정도, 검사와 변호인, 피고인의 최후 의견진술과 최후 변론은 4시 25분에 모두 끝났다.
배심원에 대한 평의진행 방식 안내 등을 마치고 4시 45분 경부터 평의가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약 1시간이 지난 5시 45분경에 평의가 끝났다고 한다. 그 후 배심원들은 양형 토의를 하고 6시 19분경에 법정으로 돌아왔다. 배심원들의 평의결과와 양형에 대한 의견을 받은 재판부는 6시 32분경에 입장했고, 이때부터 약 10분가량 판결이 선고되고 배심원들의 평결과 양형의견이 공개되었다. 그래서 모든 재판이 끝난 시각은 오후 6시 40분경이었다.
사건의 특성때문인지, 재판진행의 효율때문인지 구별키는 어렵지만, 앞선 3차례의 재판보다 훨씬 빨리 끝난 재판이었다.
배심원도 재판부도 상해치사죄 '무죄'최종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도 배심원들과 같은 의견이었다. 배심원들처럼 검찰이 기소한 상해치사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상해치사죄와 별도로 기소된 사기죄(무전취식)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밝힌 상해치사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의 상해치사죄에 대한 유력한 증거는 검사측이 제시한 증인 A씨의 진술인데, A씨가 경찰조사와 검찰조사 때 진술한 내용, 이날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았을 때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찰서에서의 최초 진술 때에는 방 구석에서 자다가 '퍼벅'하는 소리에 깨서 돌아봤더니 피해자가 피고인의 얼굴을 할퀴고 있었고 이 때 피고인이 발로 피해자를 밀쳤다고 했지만, 이후 검찰 조사에서는 담배 때문에 언쟁하는 소리에 깨서 돌아봤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얼굴을 할퀴었다는 진술은 하지 않았다는 점을 비롯해 최초 진술과 차후 진술 때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점, 과거 알콜 중독증세 치료 경험이 있는 증인이 사건이 벌어진 날 당시에 술을 먹었는지 여부에 대해 말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점 때문에 증인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당시 피해자의 몸에는 피고인의 행동에 의해 벽에 부딪혀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상처 이외에 여러 곳에 멍이나 다친 곳이 보이고 이것이 피고인의 행동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도 무죄 선고의 이유였다.
정작 피고인은 범행 당시에 술에 절어 있는 상태라 지금 자신의 당시 행동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피해자가 병원으로 이송된 직후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증인 A씨가 '당신이 발로 밀쳐서 생긴 일'이라고 하니 '아,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어 피해자의 형부에게 죄송하다고 했지만, 범죄의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문제가 된 사건은? |
피고인 이모(43세)씨와 피해자 정모 여인은 몇 년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이다. 피고인은 술을 지나치게 많이, 자주 먹으며, 일용직 노동으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
피해자 정모 여인은 남편과 이혼한 뒤, 가족과는 연락을 끊고 동거남 B씨와 경기도 부천에서 살고 있다. 피해자 정씨와 동거남 B씨가 사는 방 한 칸의 작은 집에는 인연이 있는 노숙자나 집이 제대로 없는 일용직 잡부 등이 자주 와서 함께 술도 먹고 잠도 자는 곳이었다.
2007년 12월 24일 오후 피해자의 집에는 그 전날부터 술을 먹었던 피고인과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의 동거남 B씨와 또다른 사람 A씨가 있었다.
증인 A씨가 말하는 사건 당시의 상황대로라면, A씨와 B씨는 각각 방의 한쪽 구석에 누워 잠자고 있었고, 피고인과 피해자는 막걸리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러다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어떤 문제로 다툼이 있었고 피해자가 피고인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달려드는 와중에 피고인이 앉은 상태에서 발을 뻗으며 피해자를 밀쳐냈다. 그 반작용으로 피해자는 뒤에 있던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이 과정에서 잠을 깬 동거남 B씨가 피고인에게 심한 욕을 했고 피고인은 곧바로 집밖으로 나가 또 다른 식당과 술집을 저녁 내내 돌아다녔다고 한다.
머리를 벽에 부딪힌 피해자가 두통과 어지러움 등을 호소하자 증인A씨와 동거남 B씨는 사건 이후 30여분이 지난 5시 5분경 119 구급대에 신고했고 구급대는 피해자를 병원에 데려갔다. 피해자는 중환자실에 있다가 12월 31일 사망하였다.
피해자를 병원에 이송한 다음 날 A씨와 B씨는 피고인을 병원으로 데리고 왔고 소식을 듣고 온 피해자의 형부와 피고인을 대면시키기도 했다.
한편 동거남 B씨는 그 후 종적을 감추고 피해자의 장례식은 물론이거니와 검찰측의 조사와 재판증인 출석요청 등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재판에서는 증인 A씨의 사건 당시 상황묘사를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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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터넷참여연대와 개인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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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운동을 시작으로, 권력감시와 사법개혁, 반부패 운동, 정치개혁 운동을 경험하였습니다. 약 20년 시민운동 경험을 또 다른 곳에서 펼쳐보려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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