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의 편의를 배려한 '드라이브 스루'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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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아우토반,' 미국 고속도로의 산파가 되다가솔린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처음으로 만든 나라는 독일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이 발명품을 대량생산해서 싸게 보급한 것은 20세기 초 미국이었다. 자동차는 '포디즘(Fordism)'이라 불리는 이 양산체제를 통해서 비로소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1910년대 중반에 이미 포드 생산라인의 노동자들 넉달치 월급이면 자기가 생산한 차 한 대를 살 수 있었다. 물론 넉달치 월급을 모두 털어 자동차를 구입하는 노동자들은 드물었겠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자동차 소유자들이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차가 있으면 뭐하는가? 도로가 없는데. 당시 미국의 자동차는 포장되지 않은 길을 덜컥거리는 '말 없는 마차'였을 뿐이다. 세계대전이 끝난 한참 뒤인 1950년대 중반까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자동차가 제 능력을 발휘하게 된 데에는 아이젠하워의 공이 컸다.
1919년, 군인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임무를 위해 동부와 서부를 차로 가로질러야 했다. 이 도로여행에 44일이 걸렸고, 차의 운행속도는 평균 시속 10㎞ 미만이었다고 한다. 이 답답한 여행을 견뎌야 했던 아이젠하워는 세계대전 중 독일의 도로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독일군의 기동능력이 뛰어난 도로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는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마음먹는다. 도로 건설 계획이 마련되고, 연방정부가 이 작업에 재원을 보조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미국의 주간(Interstate) 고속도로가 동부에서 서부·북부에서 남부를 잇기 시작했다. 이제 제대로 된 '자동차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집·직장·여가생활... 모든 것을 뒤바꾸다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에는 호경기가 찾아왔다. 고용과 소득이 늘면서 소비가 늘고, 기업은 부지런히 물건을 찍어냈다. 미국인들은 여분의 소득을 여가생활에 쏟아 부었다. 이미 전국적인 고속도로의 확대로 인해 여행은 더없이 쉬워진 터였고, 휘발유 값은 거저나 다름없었다.
자동차 여행이 늘면서 고속도로를 따라 '하워드 존슨'이나 '홀리데이 인'과 같은 모텔체인이 생겨났다. 몇 사람 살지 않는 마을에도 여행자를 상대로 한 식당체인이 생겨났다. 맥도날드나 데니스도 모두 여기에 속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모텔과 식당 체인이 생겨나거나 급성장한 것이 1950년대 이후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지역의 유서 깊은 호텔과 식당을 몰아내면서 낯선 여행자에게 '예상 가능한' 분위기와 맛을 팔았다.
업소들은 도로에서 쉽게 보이도록 대형의 원색 로고를 내걸었다. 이들이 이질적인 미국의 지역 문화를 획일화하는 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여행에서 익숙해진 표준화 업소들의 방식은 일상적인 삶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 처음 온 사람들은 어느 곳을 가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도로 주위에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 주유소·식당·모텔이 '표준화'에 한몫 했지만, 도로는 사회적 공간 구성도 엇비슷하게 바꾸어 놓았다.
미국의 주간 고속도로에서 도시로 진입하면 거주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고속도로 진입로 근처에는 대개 대형 주차장을 갖춘 쇼핑몰과 식당 체인이 있고, 도시 중심부를 지나 작은 길을 한참 따라가야 주거지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