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네 가족들과 함께, 이란 이스파한.
김성국
교육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은 미나네 가족들은 아이들이 거의 모두 대학을 다니거나, 대학을 나온 인텔리들이다. 게다가 해외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았고, 궁금한 사항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주고받는 얘기들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야기 중간, 영아가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미나의 아버지에게 선물로 드리자, 온 식구들이 돌려보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돈 속의 인물은 누구이며, 지폐 안에 그려진 집이 한국의 전통 집인지?"
단지 천 원짜리 한 장을 받아 쥐고, 얼마나 좋아하고 즐거워들 하는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오히려 우리가 더 신이 나서 설명을 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얼마나 우리가 우리 것에 대해 무관심했었는지 여실히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 여지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천 원짜리 지폐 속, 이황 선생 옆의 향료통 같이 생긴 게 무얼까 궁금해 한 적이 없었는데…….'
그냥 이황 선생은 우리나라 유교의 대가 중 한 분이며 그 향료통 같이 생긴 것은 제사 의식에 사용하는 그릇이라고 답을 하긴 했는데, 영 확신이 서질 않는 것이었다. 차라리 '100원 짜리를 보여주고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구국 영웅인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대해 얘기할 걸 그랬나보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자유스럽지 못한 사회적인 분위기 탓인지, 이들의 외국에 대한 관심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외국에 나가는데 많은 제한을 받는 이들에게 우리처럼 자유롭게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극동 아시아의 두 젊은 커플은, 그 존재 이유만으로도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 이란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회사들 중 하나로 알려진 삼성과 엘지, 한국의 태권도와 핸드볼, 88올림픽, 월드컵, 한국전쟁, 한국과 주변국의 관계, 경제적 상황, 우리의 여행얘기 등을, 식구들의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사실 궁금해 하는 사람의 수가, 우리보다 저쪽이 많았기 때문에 우린 주로 대답을 하는 편이었고. 국이를 주축으로는 남자들이 모여 앉고, 영아를 주축으로는 여자들이 모여 앉았다. 후세인과 미나의 통역으로 얘기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그 가운데 12살짜리 막내, 나르기스는 영아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영아를 뚫어지게 신기한 듯 쳐다보며 눈을 떼지 못한다. 덕분에 영아는 이 조그맣고 귀여운 아가씨를 동생 삼겠다며 하루 종일 옆에 끼고 다녔다.
오늘도 이들, 미나 가족들과의 소풍을 통해 이란인들의 대가족 형태를 실감 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도 대가족 제도가 남아 있다고 하기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이들의 가족 결속력은 대단해 보였다. 오늘 미나와 후세인이 만난 엄마 측의 식구들만 줄잡아 20명. 이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는 식구들이다. 아버지 쪽 친척들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하면 9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얼마 후 어른들은 먼저 떠나고, 젊은 사람들만 남아, 함께 강변을 산책하다 찻집에 들어갔다. 역시, 여행자끼리만 다니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는 법이다. 현지인들과 동행하니, 멋진 곳이 줄을 잇는다. 다리 아래의 찻집은 이미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지만, 이렇게 멋진 안쪽 공간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시원하게 뚫린 창문으론 자얀대 강이 내려다보이고, 고급스런 붉은색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 있는 고풍스러운 방에 우리는 둘러앉았다. 사촌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미나가 차를 주욱 돌리는 사이, 물 담배(Qalyan,Nargileh)를 가지고 온,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다는 모즈타바가 내게 담배를 권했다. 내가 파이프를 입에 대자, 모두들 일제히 시선이 내 쪽으로 쏠린다. 이윽고 내가 익숙하게 빨아서 뿜어내자, 모두들 탄성을 내뱉는다(이정도 쯤이야 기본이지). 젊은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분위기가 한층 더 밝은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