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대죄> <제3의 대죄>예전에 한길사에서 <화가와 소녀> <사랑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 현재는 절판.
김준희
하지만 한번 조직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은퇴후의 생활도 조용할 수 만은 없다. 수사국의 후배와 동료들은 계속 델러니를 찾아와서 그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 그 중에서도 정치인들이 해결하라고 압박하는 사건을 들고와서 델러니에게 수사를 부탁한다.
때로는 델러니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때로는 간절하게 요구한다. 델러니는 한편으로는 동료에 대한 우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자를 응징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그 사건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서 살인사건을 해결하고야 만다.
범죄자를 대하는 델러니의 태도, 그리고 어려운 사건을 수사하는 그의 방법이 잘 나타난 작품은 바로 <제1의 대죄> <제3의 대죄>이다. 이 두 작품 모두 이상심리의 범인이 행하는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다. 범인은 별다른 동기도 없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 호텔에서 만나는 사람을 교묘하게 살해한다.
이런 살인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살인에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범인은 약간의 간격을 두고 계속 같은 방식으로 낯선 사람을 살해한다. 그리고 그 간격은 점점 짧아져간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살인행진을 막을 수 있을까?
델러니는 가장 단순하면서 고전적인 방법을 택한다. 우선 살인에 사용된 무기가 어떤 것인지 알아낸다. 이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피해자를 죽음으로 이끈 상처부위를 검사해서 범행에 사용된 무기를 정확하게 알아낸다는 것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다.
이렇게 사용된 무기를 알아낸 다음에는 지루할 정도로 단순한 작업을 반복한다. 시내에서 그 무기를 파는 모든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고객의 명단을 얻는다. 당연히 그 명단에 오르는 이름은 수천 수만에 육박한다. 그들 중에서 사람을 죽일만한 완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전과를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전과는 없더라도 폭행경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일일이 확인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노가다'에 가까운 이런 일이 며칠씩 반복된다.
그렇게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나간 후에는 탐문수사를 시작한다. 용의자의 주변인물들을 만나고, 용의자의 재산관계를 조사한다. 불법으로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방과 거실을 수색하고, 기묘한 전화를 걸어서 용의자를 압박한다. 이런 단계에 이르면 델러니는 범인의 정체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다만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기소할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할 뿐이다.
범죄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철같은 델러니이런 상황에서도 델러니는 망설이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사람을 죽이고 뻔뻔스럽게 돌아다녀서는 안돼!'라고 말한다. 부인과 자식들에게는 다정한 남편이고 아버지지만, 범인의 앞에서는 강철같은 법의 대리인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만큼 그에게 '철권'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확신이 있더라도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체포할 수는 없다. 체포하더라도 곧 변호사를 통해서 풀려날 것이 뻔하다. 델러니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는 교묘한 심리전을 통해서 범인을 자멸하게 만든다. 범인을 24시간 감시하고, 희생자의 가족에게 범인과 전화통화하도록 강요한다. 범인에게 큰소리로 협박하고 호통치면서 그를 몰아부친다.
결과는 언제나 델러니의 승리다. 교묘한 범죄를 행하는 범인의 머리도 뛰어나지만 그래서 별다른 증거를 남기지 않지만, 델러니는 항상 그보다 한수 앞선다. 이런 심리전 때문인지 델러니의 범인들은 법정에 서는 경우가 없다. 그의 범인들은 모두 스스로 몰락한다. 절망적으로 달아나다가 죽음을 맞는가 하면, 건물에서 투신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수면제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자살하기도 하고, 구치소에서 풀려나지만 언론의 공세를 받고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제1의 대죄>의 원제목은 'The First Deadly Sin'이다. 'Crime' 대신에 'Sin'을 사용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죄는 인간이 짓되 심판은 하늘이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델러니는 하늘이 내려준 법을 수호하는 타고난 경찰이었던 셈이다. 작품 속에서 델러니의 부인도 델러니에게 '신의 대리인처럼 행동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델러니는 이런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에게는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파괴하는 자에게는 처벌을 가해야만 한다. 그것이 델러니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의였다. 범죄소설이 만들어낸 가장 완고하고 강직한 형사, 그가 바로 에드워드 X. 델러니일 것이다.
제1의 대죄 3
로렌스 샌더스 지음, 최인석 옮김,
황금가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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