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비밀>캐드펠 시리즈 11편
북하우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캐드펠 수사는 조용히 수도원에서 도를 닦는 나날을 보낼 수 만도 없다. <성녀의 유골>에서 작품 속의 시기는 1137년이다. 잉글랜드를 두쪽으로 가른 내전이 한창이던 시기다. 이 내전의 파도는 시루즈베리 지역까지 몰려온다.
왕의 군대는 시루즈베리 성으로 몰려와서 투항을 요구한다. 시루즈베리는 웨일즈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다. 가뜩이나 웨일즈와의 분쟁 때문에 신경쓸일이 많던 시루즈베리에 커다란 문제거리가 생긴 것이다.
당시는 중세신분사회였다. 귀족, 영주, 자유민, 농노 등의 계급으로 나뉜 사회다. 이 계급의 구분은 엄격하다. 농노가 자유민을 때리면 손목을 잘라버리던 시절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내전을 틈타서 도망친 농노도 있고, 패거리를 만들어서 마을을 약탈하고 불지르는 도적떼도 있다.
이런 일들이 모두 시루즈베리 지역에서 하나씩 발생한다. 폭설이 내린 다음날 개울물에서 얼어붙은 처녀의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숯을 굽는 장소에서 불에 탄 시신이 나타나기도 한다. 조용한 수도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여행자는 숲속에서 등에 칼을 맞고 죽어간다. 도적떼가 마을을 습격해서 마을주민들을 죽이고 재물을 휩쓸어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쉽게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 치안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전이 종식되어야 한다. 하지만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는 대화와 타협을 거부한 채 무력에 의한 승부만을 고집한다. 보다못한 고위성직자들이 차례대로 이들과의 협상을 주선하지만 이것도 소용없다.
왕과 황후의 입장이 너무도 분명한 데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협상을 망치게 하려는 부하들이 그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내전에 소모되는 비용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다. 그 비용은 사회의 위계질서에 따라 차례로 내려가 결국 농노와 가난한 자유민들에게 끝없는 부담을 강요한다. 이 즈음 잉글랜드의 상황은 계속 절망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시루즈베리에서 살인사건들이 터질때마다 캐드펠 수사가 앞에 나서게 된다. 캐드펠 수사는 한편으로는 부상자를 치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살인사건을 추적해간다. 십자군에 참전했던 풍부한 경험을 살려서 전쟁터로 변한 현실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신의 뜻을 헤아리려고 고민하는 캐드펠 수사이런 캐드펠 수사를 돕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다. 시루즈베리의 행정보좌관인 휴 버링가라는 인물이다. 휴 버링가는 두 번째 작품인 <99번째 주검>에서 처음 등장한다. <99번째 주검>에서 캐드펠은 휴 버링가를 보면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휴가 과연 어떤 인물인지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휴는 시루즈베리의 행정보좌관을 거쳐 행정장관의 위치에 오른다. 캐드펠보다 30살 가량 적은 나이이지만, 휴는 사려깊고 현명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99번째 주검>에서 처음 만난 이 두사람은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캐드펠은 휴를 믿고 휴도 캐드펠을 의지한다. 휴는 아들을 낳고나서 캐드펠에게 자기 아들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부탁할 정도가 된다. 시루즈베리에서 휴가 속세의 권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캐드펠은 주민들을 신앙으로 교화시키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이 힘과 마음을 합친다면 꽤 괜찮은 파트너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캐드펠과 휴의 활약은 1145년까지 이어진다. 20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캐드펠 수사의 참회>에서 캐드펠은 65세의 나이가 되었고 휴는 시루즈베리의 행정장관으로 주민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잉글랜드의 상황은 아직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여전히 내전이 진행 중이고 어느 한쪽도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루즈베리의 치안은 안팎으로 안정되어가고 있지만, 여기도 언제 다시 내전에 휩쓸릴지 알수 없는 일이다. 캐드펠은 휴와 함께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생겨나기도 한다.
신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다. 캐드펠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올바른 일에 대한 의지와 믿음을 가지고 죄를 지었다면 그래서 속세의 법률을 어겼다면, 그것을 과연 죄라고 볼 수 있을까? 신이 그런 일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할지 우리가 헤아릴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때문에 캐드펠은 그동안 많은 사건을 해결했지만 그 범인에 대한 처벌방식은 천차만별이었다. 자기만 알고나서 덮어둘 때도 있고, 휴와 상의해서 조용히 모른척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천벌과 기적을 연출(?)해서 동료들을 속이는 일도 있다. 캐드펠은 성직자답게 죄인에 대한 처벌을 속세의 법률보다 하늘의 뜻에 맡겼는 지도 모른다. 캐드펠의 표현처럼,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에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소의 참새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북하우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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