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족 복장을 한 아가씨들이 관광객과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박경
그런데 택시운전사는 지나치는 호텔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가고자 하는 숙소를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일러준다. 고성의 남문을 지나쳐 성벽을 따라 돌아가는데 적이 걱정스럽다. 우리가 원하는 곳을 제대로 알고 가는 것인가 싶어서. 말이 영 안 통하니 알 수가 있나.
점점 가까이 가고 있는 건 확실한데, 정확한 위치는 모르는 듯하다. 운전사는 내려서 길을 묻더니 알았다는 듯 자신 있게 다시 차를 몬다. 차가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골목길을 마구 휘젓고 다닌다. 점점 불안해진다. 마침내 막다른 길처럼 철문이 닫힌 곳에 이른다. 다시 돌아나가야 할 판.
그런데 이 아줌마 운전사, 자기 사전엔 퇴보란 있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 나가 고여 놓은 돌을 밀치고 철문을 열어제끼고는 다시 전진. 그렇게까지 길을 개척해 가며 나아가는 걸로 봐서는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좀처럼 우리가 찾는 게스트 하우스는 보이질 않는다.
어느 뒷골목에서 택시는 섰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닌 것 같다. 운전사는 차에서 내려 건물 의 뒷문으로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앞으로 가서 보면 이 건물이 맞을라나 싶은 생각에 열심히 따라가 본다. 좁은 통로와 계단을 지나고 나니 1층의 프런트가 보이고 밖으로 나가 간판을 확인했지만 아니다. 들어와 프런트에 있는 호텔직원에게 우리가 찾는 게스트 하우스를 물으니 모른단다. 그렇다면 이 부근도 아니란 말인가.
다시 택시 운전사를 따라 택시가 있는 곳까지 갔다. 운전사는 이 근처 어디라고 계속 주장하는 듯하다. 은근히 부아가 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더는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미 주판알도 튕겨 놓았다. 이렇게 골목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건물 뒷문으로 들락날락거리게 해놓고 설마 35위안을 다 받을 심보는 아니겠지. 나는 화가 났다는 시위를 하듯 잔뜩 인상을 쓰면서 30위안만 내밀었다.
운전사는 쏼라쏼라 항의를 한다. 나는 또 선선히 5위안을 마저 주었다. 말이 안 통하니 뭐라고 더 따지기도 그렇고, 골목길을 누빈 아줌마 운전사의 수고를 무시하기에도 마음이 좀 걸려서였다. 여행이 거듭되면서 이런 종류의 일에는 점점 너그러워지고 있는 내 자신을 느끼게 된다. 마음을 다스리게 되는 법도 배우게 된다.
여행을 마치고 시간이 흐른 후,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분노했거나 별것도 아닌 일에 연연해했던 걸 돌이켜 보고는, 내가 왜 그랬을까 으으으 머리를 벽에 짓찧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현재 여행지에서의 나를 여행이 끝난 미래의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걸 종종 발견하게 된다.
화가 잔뜩 난 나에게 미래의 내가 위로한다. 시간 지나면 별거 아니거든. 쓸데없는 일로 여행 기분 잡칠 필요 없거든. 말하자면 그 순간을 지배하는 얄팍한 감정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건 마치 악몽 속에서 이건 꿈일 뿐이야, 스스로를 위로하듯 찰나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그러다 보면 화가 나려다가도 쏙 들어가 버릴 때가 있다. 마음이 상하려다가도 대범해지는 때가 있다. 이쯤 되면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있으니, 스스로가 대견해지고 우쭐해질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