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자 싸롱'에서 멸치국수를 먹고 있는 자전거 일주팀
이윤기
맛있는 집이 꼭 비싼 집은 아니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고 3 수험생과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우리 종주 팀도 비싼 음식을 찾아다닐 형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왕 돈 주고 먹는 음식인데 아무 거나 먹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관심은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아서 밥을 먹는 일이었다. 준비팀은 제주도로 떠나기 전부터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맛집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우리 여행 일정이나 여행코스에 딱 맞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하는 우리에게 맛있는 집 정보를 가장 많이 준 사람은 제주YMCA 송모 국장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는 답사팀과 함께 자동차로 제주를 한 바퀴 돌면서 ‘빼어난’ 사투리로 민박집 방값을 팍~팍~ 깎아주었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여행자들을 위해서 양 많고 맛있고 비싸지 않은 식당을 종주 일정에 포함시켜주었다.
비 쫄딱 맞고 조개죽 먹은 '시흥 해녀의 집'시흥 해녀의 집은 성산에서 세화로 이어지는 종달리 해안도로변에 있다. 조가비 박물관과 마당(주차장)을 함께 쓰는 건물이다. 성산일출봉에서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린다. 우리 팀은 성산일출봉 민박집에서 일회용 비닐 비옷을 입고 자전거를 달려 아침밥을 먹으러 이 식당을 찾았다.
겨우 30분 자전거를 탔을 뿐인데, 비옷이 가려주지 못하는 바지와 신발, 양말 그리고 장갑이 모두 젖었다. 16명이 모두 하나밖에 없는 난로가에 둘러서서 옷과 장갑을 말리느라 분주하다. 모두들 꼴이 말이 아니고 불쌍해 보였는지 여기저기 의자 위에 비닐 비옷을 걸쳐두고 어수선하게 떠들고 있었지만,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중 누구도 싫은 소리나 표정을 비치지 않았다.
정갈한 밑반찬과 함께 나온 쑥 부침개가 가장 눈에 띄었다. 이 겨울에 푸른빛이 선명한 부침개가 나오길래 재료가 무언가 궁금했었는데, 한 젓가락 잘라서 입에 넣고 씹어보니 향긋한 쑥 냄새가 묻어 나왔다. 아마 지난봄에 캔 쑥을 데쳐서 냉동보관 했다가 사용하는 것이었을 게다.
이 집 조개 죽은 미리 끓여 놓았다가 데워서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고 지루하다. 마치 도시 근교에 있는 닭백숙 집에 앉아 있는 것처럼, 연신 김을 내뿜으며 치익~ 치익~ 소리를 내는 압력솥 소리를 들으며 기다려야 한다. 모르긴 해도 이 집 죽 맛은 신선한 재료와 고소한 참기름 그리고 압력솥이 비결이 아닐까 싶다.
조개 죽은 보릿고개에 먹던 멀건 죽이 아니다. 압력솥에서 익혀져 나온 뻑뻑하고 맑은 죽이 큰 그릇에 한 그릇씩 담겨서 나온다. 멀리 주방에서 죽을 담을 때부터 고소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죽을 먹으며 그릇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특별한 재료가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냥 바지락 조갯살과 흰쌀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냥 육지에서 먹던 조개 죽과는 맛이 다르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죽 맛이 최고다. 밑반찬 중에는 비릿한 바다 내음을 전해주는 미역무침과 조그만 게를 통째로 튀겨주는 게튀김이 특별하다.
시흥 해녀의 집은 요즘 제주의 아름다운 길 걷기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제주 올래’ 게시판에 추천 맛집으로도 소개된 집이다. 안타까운 일 중 하나는 아침부터 비를 맞고 추위에 떨며 자전거를 타고 온 탓에 자전거 일행 누구도 이 집에서 사진을 찍어오지 않아 사진도 한 장 없이 글로만 소개하게 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