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이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인디오를 그린 벽화.
문종성
'끔찍한 싸움이었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개들의 혈투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저 걷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슬막이 되자 꾸물꾸물한 날씨가 기분을 더욱 음울하게 만든다. 한 걸음 더 깊어진 얄푸른 하늘 아래 성당의 종소리가 메아리친다. 거룩한 파고를 만들며 흩어지는 청백의 종소리에 잠시 마음이 숙연해진다. 성당의 종소리에 마음이 울린 나는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이건 밥쇠(절에서 밥먹을 때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다섯 번 치는 종)로군.'
발걸음을 급히 돌려 숙소로 향했다.
저녁 시간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기에 숙소 사람들이 다같이 얼굴을 보는 시간이다. 모두가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는 시간. 빵과 수프, 그리고 닭고기 볶은 것과 감자요리로 만든 간단한 식사를 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여행의 경험과 계획들을 이야기한다. 내가 머무는 도미토리에 3명의 친구가 더 있다. 런던에서 온 영국 친구 샘(29·sam), 벤쿠버에서 온 캐나다 친구 앤드류(23·andrew), 그리고 뜻밖에도 한국인 인희씨가 있었다. 이런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은 흔치 않다.
인희씨는 여자 혼자의 몸으로 세계일주 중이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세계일주를 한단다. 그런데 많은 여행자들이 각각의 개성을 살려 여행을 하지만 그에게도 자신만의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바로 구매대행을 하며 경비를 벌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물건을 구입해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해외운송으로 보내주고 그 차익으로 경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여행이다.
잠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우린 범생이 스타일의 샘과 날라리 기질이 다분한 앤드류가 기분좋게 한 잔 하고 들어온 다음 남자들끼리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종성, 넌 자전거 세계일주라며?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을."
먼저 앤드류가 포문을 열었다. 내 여행 방식을 듣고서는 어이없다는 듯 껄렁껄렁한 그의 말투에는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물론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아. 자전거만이 주는 특별한 낭만이 있거든. 낯선 세계에서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는 자전거만한 수단이 없지. 그런데 앤드류 넌?"
"난 육로 세계여행이야. 캐나다를 왔다갔다하면서 여름엔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른 시즌엔 여행하고 경비가 떨어지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 돈을 벌어 나오는 거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땅으로만 다니거든. 콜롬비아에서 파나마 건너올 땐 배를 탔어. 어쩔 수 없이 대륙을 건널 땐 배를 이용하는 거지. 어디라도 비행기 없이 가능한 한 멀리 가고 싶어."
"매번 왔다갔다 돈을 벌어 다시 나오기도 쉽지 않을텐데…."
"그렇긴 하지. 난 지난 5년간 토론토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학위를 따려고 발버둥쳐왔지. 그러다 새로운 형태의 공부를 발견했어. 돈에 대한 압박과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보다 궁극적인 배움을 찾아낸 거야. 그게 여행이지.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해되는 진실이 없는 상황을 꺼리지. 하지만 여행을 단지 무언가 이해하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 여행하는 순간만큼은 나를 잊어버리고 싶거든. 세상과 삶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거야. 여행을 통한 경험들에서 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