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 석유 시추 시설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www.astrosurf.com
1995년은 세계적 석유기업인 로열 더치 셸(Royal Dutch Shell)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되고 있다. 북해산 원유 생산 거점인 영국과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서 환경운동가 및 원주민들과 맞붙어 지옥 문턱까지 다녀온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먼저 영국의 경우다. 셸은 이 무렵 북해 한복판에서 원유 채취 플랫폼 역할을 해오다가 1990년대 초 수명이 다한 시추 시설을 북해 한복판에 가라앉혀 퇴역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스코틀랜드 연안까지 이를 옮겨와 폐기처분하는 것보다 안전하고 비용 절감에도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관련 당사국인 영국 정부도 스코틀랜드 서해안에서 250㎞ 떨어진 심해에 이 시추시설을 가라앉힌다는 셸의 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공개되자 그린피스를 포함한 국제 환경단체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석유 시추 시설에 남아있는 원유를 포함한 독성 물질이 북해를 '지옥의 바다'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북해 한복판에 있는 석유 시추 시설은 그린피스 활동가들에 의해 한 달 가까이 점령당했고, 전 세계 언론이 바다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 드라마를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유럽] 국제적 반대여론에 결국 무릎 꿇은 셸높이 140m, 무게 1만5000톤의 석유 시추 시설을 심해 한복판에 통째로 빠뜨려 버리겠다는 셸의 계획을 지지했던 존 메이저 수상과 보수당은 곤경에 빠졌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셸의 계획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찬성 여론의 두 배에 육박했다.
이 사업은 당초 북해를 영해로 두고 있는 영국 정부의 허가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었지만 여파는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유럽 전역에서 셸 주유소의 매출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반대 시위가 가장 격렬했던 독일에서는 셸 주유소 방화 사태까지 벌어졌다. 급기야 당시 헬무트 콜 총리는 선진국 정상회담인 G7에서 존 메이저 영국 총리에 항의하고 셸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감당할 수 없이 번지는 국제적 반대 여론에 결국 셸은 무릎을 꿇었고 4억5000만 달러나 되는 추가 비용을 들여 이를 선박 터미널로 재활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그렇다고 심해 처분이 더욱 안전하다고 주장해온 전문가들이나 셸이 이러한 기존 견해를 바꾼 것은 아니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반대 여론을 설득할 수 없는 한 무조건 사업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경영상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금도 셸의 사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환경경영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교과서처럼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