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봉에서 내려다 본 바다. 왼쪽의 인도양, 오른쪽이 대서양이 만나기 때문에 파도가 거세다. 서양인으로 처음 이곳에 도착한 기록을 세운 디아스도 9년 뒤 다시 방문하던 중 이 풍랑에 죽었다.
조수영
아프리카의 가장 끄트머리로 알려진 이곳은 1488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던 포르투갈인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z, 1450 ~1500)가 발견했다. 당시 이름은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었다. 서로 다른 두 바다가 만나는 이곳의 바람은 팽팽했고 파도는 거세게 부딪쳤다. 돛 하나로 바다를 가르던 위세 좋던 범선도 이 바다에선 맥을 못 췄다. 디아스도 결국 이 폭풍의 바다에서 풍랑으로 죽고 말았다.
폭풍의 곶을 희망봉으로 둔갑시킨 것은 포르투갈 국왕이었다. 선원들이 겁을 먹어 항해를 꺼리자 신대륙을 발견하는데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음의 바다'를 '희망의 바다'로 이름을 바꿔버린 것이다.
이름을 바꾼 희망봉은 그 후부터 이름 그대로 선원들의 희망이 되었다. 동방으로 가는 신항로가 개발되었고, 인도를 향한 수개월의 항해를 끝낸 선원들은 향신료와 보석을 가득 싣고 부자가 되어 돌아왔다. 선원들에게는 이곳만 넘어서면 대서양이 시작되고, 고향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희망의 이정표였을 것이다.
유럽의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 가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리적 가치까지 더하고 싶었나보다.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희망봉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은 아니다. 케이프반도의 최남단일 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은 희망봉에서 남동쪽으로 160킬로미터 더 내려간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다. 희망봉 그 자체는 그저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평범한 곶(cape)에 지나지 않는다.
'마젤란의 필리핀 상륙'이 필리핀의 입장에서는 '유럽의 침략'으로 기록되듯, 역사는 같은 장소라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유럽의 입장에서는 신대륙의 꿈을 전해주는 '희망의 봉우리'로 불리지만, 아프리카 입장에서는 희망봉이 발견된 이래 5백여 년에 걸친 유럽의 침략이 시작된 곳이니 희망과는 요원한 '절망의 봉우리'로 불려야 되지 않을까 싶다.
원숭이의 봉변을 당한 관광객의 입장에는 '쓰라린 상처의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남극의 신사가 아프리카에 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