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필동에 옛 골목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김대홍
필동이란 동 이름은 조선시대 남부의 부사무소(部事務所)가 이곳에 있어 부동(部洞)으로 부르다 와전되어 붓골로 바뀌었고, 이 붓골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금 이름이 되었다.
인구 5천명을 조금 웃도는 이 작은 동네의 명물은 '한옥마을'이다. 1998년 4월 18일 문을 연 한옥마을엔 한옥가옥 다섯 동이 모여 있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를 빼곤 모두 손을 대지 않은 곳이다. 조선시대 집 구조를 제대로 볼 수 있어 전통문화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필동은 또한 한국영화의 메카였다. 한국영화가 한창 성장하던 1960년대 초 충무로3가 좁은 골목엔 영화사 80여개가 모여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조금 누그러졌지만 영화사들이 대거 강남으로 옮기기 전까지 필동과 명동 일대 충무로에는 50여개에 이르는 영화제작업체가 몰려 있었다. 지금도 20여개 정도 되는 영화사와 영화 관련단체가 남아 충무로의 명성을 잇고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거리 중 하나지만 필동의 과거는 그다지 아름답진 않다. 수도방위사령부·헌병사령부·합동참모본부 등 군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격변기마다 이곳에선 총성이 울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 마을인 왜성대(倭城臺)가 있었고, 왜성대에선 조선총독부와 통감관사가 자리를 잡고 조선을 감시했다.
일제와 군사정부의 흔적을 지우고 문화거리로 거듭난 필동. 2007년 말과 2008년 초 몇 차례 걸쳐 그곳을 찾았다. 사진 촬영일은 2007년 12월 28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다.
남산에 올라가는 가장 한적한 길, 근처엔 값싼 식당골목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