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이란의 시골에선 문에 달린 손잡이도 남자용, 여자용이 따로 있답니다. 왼쪽이 여자용, 오른쪽이 남자용.
김성국
갑자기 화면을 가득 매우는, 벌거벗은 남녀의 몸뚱아리우리는 이미 미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는 불안한 예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지은 지 몇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흙집들 사이로 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우리는 끝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이왕 도와주겠다는 현지인을 따라 나선 길.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하늘에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골목골목을 열두 번도 더 꺾었을까. 드디어 아저씨 집에 도착했다. 흙으로 지은 오래된 옛날 집, 왠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대문이다. 실제로 150년이나 된 집이라고 했다. 하지만 집안 내부는 지금까지 우리가 방문해 본 여타 다른 이란인의 집과 다르진 않았다.
막상 집안으로 들어선 후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골목골목을 꺾었던 기억을 다 잊을 만큼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잠시 후 좀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아저씨는 이란 음악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놓고 함께 보자고 했는데, 문제는 그 테이프가 음악 관련 필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테이프를 걸고 난 후 아저씨는 내게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느냐고 또 물어왔는데, 당시엔 중국어 해석을 도울 일이 있나보다는 생각에 별 뜻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저씨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갑자기 화면을 가득 메우는, 벌거벗은 남녀의 몸뚱아리, 그리고 신음소리… 세상에나! 이걸 설마 내가 해독해 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난 그 아저씨가 다른 걸 찾던 중 몰래보던 장면이 우연히 나온 거겠지 하는 생각에, 짐짓 못 본 척 했는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아저씨는 차례차례 장면을 넘긴 후, 중국 포르노 여자 배우가 나오는 장면(Scene)을 찾아서, 그 여자가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하는지 묻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 내용이라 해석을 해주긴 했는데, 영아랑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문화 차이로 해석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남자끼리 있던 것도 아닌 데다, 그것도 원리주의의 나라라는 이란에서 일어난 일이니 말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우리가 딱 잘라서 거절하지 않았다면 빈방이 있는데도 우리와 한 방에서 자려고 한 분위기다. 가족도 집에는 어머니 한 분밖에 없다고 하는데, 게다가 우리는 아직 어머님을 뵙지도 못한 상태가 아닌가.
고마운 초대와 환대 덕분에 비싼 호텔에서 머물지 않아도 되어 너무 고맙기는 했지만 빨리 아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칼 가는 소리 나나 잘 들어봐."
오늘 하루는 길에서 너무너무 근사한 경험을 했고 밤에는 또한, 이러한 특별한 경험까지 하게 되는구나. 자전거 여행을 할 때면, 늘 하루에 한두 가지 해프닝은 있게 마련이다. 마음은 불안했지만, 피곤에 지친 몸은 우리를 그냥 그대로 깊은 잠 속으로 빠지게 해 주었다.
이튿날, 무사히 아침이 밝았다. 새벽 명상을 마치고, 새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왔다. 아침, 태양의 광명이 모든 불안함을 떨쳐내게 했다. 아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짱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마을로 안내했다. 1000년도 넘었다는 마을 '나인'을.
그리곤 또 다시 짧은 인연도 안녕이다. 우리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사막으로 들어가려 한다. 사막에는 지금 모래바람이 심하다는 얘기가 들리는데도 영아는 용기 있게 "노프라블럼(No problem!)"을 외쳐댄다. 역시 대단한 여자다.
이제 곧 사막루트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