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고양이 사체. 이 정도면 그나마 무난한 수준이다. 창자가 다 터져나와있는 작은 짐승 혹은 구더기로 들끓어 있는 눈 떠 죽은 소, 경직된 자세로 누워 발 뻗어 있는 개들의 사체는 소름을 넘어선 공포를 야기한다. 가끔 도로 위에 압착되어 흔적만 남은 화석화 된 경우도 많다.
문종성
멕시칼리를 벗어나 70km정도 떨어진 도시인 산 루이스(San Luis)에 가는 길. 명주바람에 실려 온 무미건조한 냄새만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오후의 여정이다.
좌로는 회뻘건 등살을 내보이는 민둥산이 건조한 피로를 급생성시켜주고 있고 우로는 넓게 펼쳐진 잡풀과 결고운 모래밭이 황량한 배경의 막막함을 주도하고 있다.
뻑뻑한 체인에서 나는 철컹철컹 거리는 소리는 이 길을 달리는 내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여기에 아스팔트 사이로 힘겹게 꽃을 피운 들꽃이 바퀴에 밟힐라 조심조심 피해 가지만 날벌레들이 자꾸 이마에 박치기를 해오는 것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왜 나한테 달려드는 거야? 흡혈할 것도 아니면서. 그런 행동, 서로에게 득 될 게 없잖아. 나 좀 내버려 둬, 제발!'
가뜩이나 잠 잘 때 귓전에서 왱왱거리는 모기 때문에 약이 올라 있는 통에 다른 잡것들의 도발은 내 안에 저 깊숙이 묻어둔 살인본능을 세차게 깨워낸다. 잘못 걸리면 죽는다는 걸 알텐데도 녀석들은 내 손바닥 사이를 참 스릴 있게 잘도 빠져 나간다. 어쩌면 그들의 레이다망에 포착된 내 운동신경이 면밀히 간파된 건지도.
과도하게 친절한 남자, 그가 바란 것은?도중에 속도계 배터리가 스르르 갑자기 꺼졌다. 수명이 다한 것이다. 지금까지 기록이 죄다 지워지는 허탈한 순간이다. 하지만 기록을 따로 정리해 왔기에 다행히도 누적거리는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 풀숲으로 도망 들어가는 도마뱀 보는 것이 특별한 일일 정도로 별 일 없이 2번 도로만 계속 따라간다. 오후 5시 경 상산 루이스에 도착.
일단 자전거 샾에서 속도계에 끼워 넣을 수은 전지를 구입할 요량에 자전거를 타는 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그는 다행히도 영어를 할 줄 안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자전거 샾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자전거 샾? 물론이지. 나를 따라오라구. 바로 근방이야."
그는 자신이 인도하겠다며 친절히 자전거 샾까지 안내해 준다. 낯선 이방인의 자태가 기이한지 이리저리 동물원 원숭이 보듯 사람들이 애마 로페카(Ropeca, 히브리어로 '위로하는 자')와 내 몸 구석구석을 훑어본다. 여행에 관한 틀에 박힌 대화가 오고간 후 수은 전지가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자전거 샾에는 없었고, 길 모퉁이를 돌아 전자상가에 가면 있다고 일러준다.
"전자상가에 있는 거야? 그렇군. 이 봐, 내가 거길 알아. 날 따라와."
남자는 다시 한 번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정황상 충분히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음에도 너무 친절하다 싶을 정도의 과도한 배려였지만 그렇다고 앙칼지게 거절할 분위기는 또 아니었다. 남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달뜬 표정으로 내 편의를 봐 주었다. 남자의 통역 덕분에 어렵잖게 속도계 수은 전지를 구입해 수리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근데 이름이 뭐예요?"
조금 때늦은 질문이다. 우린 서로의 이름도 묻지 않은 채 얼마 간을 같이 있었던 것이다.
"호세(Jose)."
짧게 답한 그는 내가 눈웃음을 건네자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 있잖아."
"네?"
"음, 나…."
남자는 살짝 뜸을 들였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일까? 설마 여행자에게 무리한 부탁이나 요구를 하려나? 시원하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호세의 시선은 내 눈동자를 약간 비켜나 있었다.
"괜찮아요, 말해 봐요."
그에게 편하게 대해주자 그가 이윽고 말문을 이어갔다.
"저기 나, 콜라가 마시고 싶은데…. 콜라 좀 사 줄 수 있어?"
"콜라요? 푸하하."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살짝 긴장한 채 무슨 얘기가 나올까 그의 검고 탁탁한 입술을 주시하고 있는데 기껏 콜라 사 주라는 아이같은 요구라니.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
"물론이죠."
그의 도움에는 이미 콜라 한 캔 이상의 가치가 함의되었기에 난 기분 좋게 그를 데리고 약국으로 가서 시원한 콜라 한 캔을 사 주었다.
"고마워."
쉰, 아니 외국인 나이를 외관만 가지고는 함부로 재단할 수 없기에 아무리 젊어도 마흔 줄은 되어보이는 어른이 천진난만하게 콜라를 바라고 또 마시는 모습이 귀여운 게 나도 연신 유쾌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