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할 수 있는 책갓 나온 책 선물도 좋지만, 오래 묵은 책 선물도 좋습니다. 헌책방에서 멜빌 소설 영어판이나 조지 오웰 소설 영어판, 헤일리 소설 영어판을 찾아서 선물해 볼 수도 있겠지요.
최종규
모든 헌책 값이 ‘천 원’이지 않습니다. 요즘 물건값을 헤아리면, 헌책방에서 파는 여느 책 한 권 값은 ‘삼천∼사천 원’이 알맞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싸게 파는 헌책방이라고 해도, ‘한 권 = 천 원짜리’ 책을 사는 일이란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천 원짜리 책 선물”이나 “삼천 원짜리 책 선물”이라고 말해야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도 값싸게 나오는 <범우문고>라든지 <책세상문고>라든지 <살림문고>는 삼사천 원이면 장만할 수 있습니다. 새책방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자리에 밀려나 있는 손바닥책이지만, 우리들이 찾아 주고 사랑해 주면 사람들 손길 많이 탈 만한 곳으로 옮겨나올 수 있겠지요.
돌이켜보면, 고등학교를 다니던 1993년까지, 인천에 있는 새책방들에서 <서문문고>와 <을유문고>를 천오백 원 안팎으로 사서 읽을 수 있었고, 손쉽게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1970년대 세로쓰기판 소설책 재고가 남아 있는 새책방에서는 옛날 값으로 눅게 사들여서 읽은 뒤 동무들한테 선물하기도 했어요. 어쩌면 책 선물이란, 값나가고 소중하며 훌륭하다고 하는 책을 나누어 주는 일이라기보다, 값싸게 사서 읽으면서도 마음을 적시거나 움직이는 책, 단출해서 뒷주머니나 잠바 안주머니에도 들어갈 만한 작은 책, 예수님이나 부처님 말씀처럼 훌륭하다고는 못해도 고이고이 되새기며 헤아릴 만한 줄거리를 담은 책을 함께 즐기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주는 쪽에서도 짐스럽지 않고, 받는 쪽에서도 짐스럽지 않게. 주는 쪽에서도 ‘받아서 읽어 줄 이’가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재미나게 읽고 받아들이거나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책, 받는 쪽에서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책을 골랐을까’ 헤아리면서 지금 내(받는 사람)가 내 삶을 어떻게 꾸리고 있는가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는 책을 같이 나누는 일이기도 할 테고요.
한두 주에 한 번쯤 서울땅을 밟아 봅니다. 인천땅 헌책방으로는 살짝 아쉽다고 느끼는 대목, 좀더 너른 헌책방 품을 느끼고 헌책방마다 다 다른 가슴을 맛보고 싶어서. 쉽지 않은 발걸음인 만큼, 한 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연락을 해 보며 만나자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반가운 이를 만날 때면, 헌책방에서 골라든 책을 죽 보여주면서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하나 가져가시라 하거나, 예전에 읽고서 참 좋았다고 느낀 책을 다시 장만해서 조용히 내밀어 봅니다. 마땅한 노릇이지만, 책을 선물하자면, 제가 선물할 책을 받는 사람이 반길 만한 책인지 아닌지를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책 선물을 받을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생각으로 살며, 어떤 사람들과 복닥이며 어떠한 걱정이나 어려움이 있는지를 짚어 나갑니다. 그분이 벌써 읽은 책이어서는 안 되고, 그분이 하는 일에서 다 느끼고 있는 이야기를 되풀이 건네는 책이어도 안 됩니다. 책 선물 값으로 치면 다문 천 원, 또는 이천 원, 또는 삼천 원, 또는 오천 원쯤이지만, 이만한 돈을 들이는 일보다, 책 선물 받을 사람 형편과 매무새와 둘레 터전을 헤아리는 데에 들이는 마음씀이 훨씬 큽니다.
옷 선물, 음반 선물, 공연표 선물, 물건 선물하고 책 선물이 다르다면 이러저러한 대목이라고 느껴요. 선물로 들어가는 돈은 적다고 하지만, 선물할 책을 고르는 데 들어가는 품이나 시간이며 마음씀은 꽤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책 하나 선물하려고 생각하고 찾고 움직이노라면, ‘그러면 나는 어떤 책을 읽어서 마음이 흐뭇하지?’ 하고 되짚게 됩니다. ‘나부터 나한테 선물할 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곱씹게 됩니다. ‘내가 나한테 책 하나 선물하듯이, 내가 만나는 분한테도 책 하나 선물해야겠지’ 하고 되뇌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