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후아나 풍경국경도시의 이점을 안고 최근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으나 동시에 내륙지역 노동인구 대량이주 등으로 심각한 빈부격차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진 속에 사는 사람은 그래도 나은 편. 도시 내에서도 폐가와 진배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
문종성
국경을 두고 샌디에이고와 마주한 티후아나는 마치 변압기 같은 곳이다. 이곳은 단순히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도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화폐가 공존하며 급속한 문화충돌의 완충작용을 해내는 곳이다. 또한 미국인들은 부근 지역을 가격이 저렴한 휴양지로, 남미인들은 이곳을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관문으로 여기고 있다.
새로운 풍경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그들의 표정이다. 눈빛에 기름기를 쫘악 발라놓았는지 느끼함에 눈을 마주치기조차 부담스럽다. 그런데 조금만 비틀어보면 또 그 눈빛이 상당히 얍삽한 사기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근거없는 확신이 생기기도 한다.
멋드러진 올백 머리에 세심하게 다듬은 듯한 콧수염. 칼주름을 잡아 놓은 바지단과 정갈한 빛깔로 스타일을 마무리 하는 구두. 물론 전혀 외관에 신경쓰지 않는 부류들도 많다. 남산만 하게 부른 배를 보면 임산부가 확실한데 시선을 위로 하면 남자인 경우와 개성 강한 집시문화를 표방하며 길거리를 배회하는 듯한 사람은 알고 보면 진짜 거지인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오히려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의 꾸밈새가 그다지 도드라지게 보이지 않은 것은 먹고 살기 바쁜 일반적 전형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얼기설기 놓인 전깃줄처럼 꼬여진 생활같이 보이지만 이들에게도 가슴 속에 깃든 작은 꿈이 있으리라. 그리고 앞으로 이들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지내는가가 멕시코 여행의 관건이 되겠다.
'잘해내겠지?'
새로운 물결에 대한 설렘과 낯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공존한다. 10월 30일. 썸머 타임 해제로 이 주부터 시간이 한 시간 늦어졌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을 평소보다 한 템포 빨리 잡아당긴다. 100달러 환전을 하니 1000페소 조금 넘게 나온다. 도로 지도를 구입하려 했는데 간단한 전국 도로만 표기되어 있는 책자가 170페소나 한다. 할 수 없이 다음 도시인 멕시칼리에서 구해보기로 하고 포기했다.
드디어 첫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 내뱉은 후 페달을 밟고서 도로를 밀쳐 나간다. 새롭게 시작하는 여정이 가장 무거운 짐들을 들고 가는 때다. 가방에 소모품들이 잔뜩 들어있는데 그 중 대부분이 물과 음식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6620km 북미 자전거 대륙 횡단을 완주한 기념으로 LA에서 소형 기타를 후원받았다. 긴 여정에서 외로울 때 가끔 기타 연주로 고독을 달래라는 것이다.
근래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멕시코의 도로 여건이 좋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티후아나와 멕시칼리를 연결하는 유일한 하이웨이인 2번 도로는 왕복 2차선 구간이다. 그래서 트레일러나 버스 등이 지나갈 때마다 50cm안팎의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대개는 내가 먼저 피하는 게 상책인지라 자전거를 도로 바깥으로 옮기지만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협소한 도로에서는 새색시마냥 자전거에서 내려와 다소곳이 정지해 있는다. 그러면 차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 속도를 줄여 천천히 지나가게 된다. 거칠 것 같았던 멕시코에서 의외의 모습이다. 다만 개들만이 낯선 방랑자의 퀘퀘한 냄새를 맡고는 철조망을 따라 짖어대며 달려올 뿐이다.
트럭이 전세 내다시피한 도로를 자전거로...이렇듯 트럭이 거의 전세 내다시피 한 도로를 짐 무게에 휘청거리는 자전거로 가니 들소 떼의 대이동에 거북이가 멋모르고 동참하는 격이다. 그래도 간간이 힘내라고 큰 소리로 격려해 주는 사람들의 반응에 입꼬리는 올라가고 힘이 난다.
나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 손에 내 손을 얹어 반갑게 인사한 후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시선으로 나누고 싶지만 아직은 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지 못했다. 국경도시에서만큼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람들과의 교제는 적응된 후 다음으로 미룬다.
특별한 일 없이 마실 다니듯 천천히 달린다. 하지만 미 중서부 지역부터 유발된 무릎 통증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오른쪽 무릎 바깥뼈 쪽에 계속에서 진통이 찾아왔다. 걸어서는 무릎을 굽히기 힘들 정도다. 거기에 귀까지 말썽이다. 오랜 여행 중에 하루에 몇 시간씩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으니 무리가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음악은 귀에 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무릎의 상태는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는 것 같다.
'아프면 안 되잖아, 이제 또 시작인데. 아프지 말자.'
내 몸을 내가 위로하며 바람을 가른다. 하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 제대로 페달질을 할 수가 없다. 평소 100km 가야할 거리를 50km도 채 못 갈 정도로. 물론 해가 짧아졌고, 경사가 오르막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적은 거리였다. 더구나 요즘 식욕이 좋지 않다.
점심도 사과 3알로 간신히 입맛을 달래 배를 채웠다. 자전거 여행이라면 으레 밑빠진 독과 같은 위를 가지는 게 일반적이어서 많이 먹어도 모자랄 판인데. 별로 배도 고프지 않고 그렇다고 쉬 지치지도 않으니, 갈수록 살은 조금씩 빠지고 이 무슨 일인지. 뭔가 화끈한 먹을거리를 찾지 않는 이상 여행이 아닌 고행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오후였다. 어느 길을 지나가는데 화물트럭들이 멈춰 있었다. 전깃줄이 전봇대에서 풀렸는지 도로에 낮게 내려와 차들이 지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전깃줄 하나에 덩치 큰 화물트럭들이 꼼짝을 못하는 장면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