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럭길
김대홍
장충동은 남산 자락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형태다. 동대지하철역 사거리를 중심에 놓고 크게 네 군데로 갈라진다.
서북 지역엔 서민 주택가와 영세업체들이 많다. 이 동네선 군데군데 낡은 집들이 눈에 띈다. 얼핏 봐도 30년 이상은 족히 됐을 집들이다.
남소영길·고야산길 쪽으로 골목길이 남아있는 편이다. 남소영(南小營)은 조선시대 어영청 분영으로 서울 장충단 남소문 옆에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길 이름이 붙었다. '고야산길'이란 이름에선 일제시대 이 곳에 있었던 고야산 용광사(高野山 龍光寺)의 흔적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이 곳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한 선배는 "이렇게 전선줄이 하늘을 뒤덮은 곳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얼키설키 얽힌 골목길이 아니어서 길 맛은 덜하다. 단, 골목은 단정한 느낌이다. 여느 골목길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화분이 길 곳곳에 놓여 있다. 이파리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 쓸쓸한 느낌이다. 창문엔 말린 야채가 뭉텅이로 걸려 있다.
길은 대부분 고른 시멘트길이었지만, 한 곳엔 시멘트 보도블럭이 깔려 있다. 흙길을 덮을 때 과거 시멘트 보도블럭을 흔히 깔았다.
보도블럭은 쉽게 깔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자주 이용하다 보면 블록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곳에 물이 고였다. 걸어가다가 가끔씩 고인 물이 '찍'하면서 올라오면 그렇게 기분 나쁠 수가 없었다. 이 곳 보도블럭길 양 옆엔 시멘트로 튼튼하게 막음을 해서 비가 오더라도 물이 올라올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재미있는 곳은 평양면옥 골목길이다. 86년 문을 연 이곳엔 '삼대를 이어왔다'는 홍보문구가 붙어 있다. 주인 김대성씨의 조부와 부친이 평양 대동문 옆에서 '대동면옥'을 경영했기 때문이다.
건물 뒤엔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이 있는데, 여기에 '평양면옥'이란 화살표시가 돼 있다. 화살표를 따라 구부러진 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식당 입구가 나온다. 뒷길을 따라 식당에 들어오게 한 게 재미있다.
평양면옥길 쪽엔 이끼가 잔뜩 핀 담벼락이 보인다. 요즘 벽은 마감처리를 잘 해서 아무리 응달이라도 이끼가 자랄 틈이 없다. 이처럼 이끼가 밭을 이룬 모양을 참 오랜만에 본다.
동국대와 소피텔앰배서더 가운데 언덕 동네 쪽엔 사잇길이 발달한 동네가 조금 남아 있다. 가파란 경사길 사이에 '하숙생 구한다'는 표지판이 많이 붙어 있다. 동국대생이 많이 묵는 하숙촌인 셈이다. 빌라촌이라 전형적인 골목동네와는 거리가 멀다.
김수근 이희태 승효상...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 경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