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르큘 포와로의 활약, 그리고 서술트릭의 묘미
동서문화사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포와로의 외모는 우스꽝스러운 편에 속한다. 처음에 그를 보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다.
영국인들에게는 포와로(Poirot)라는 이름 자체도 발음하기 힘들다. 그 이름의 철자를 보고 '포르트'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법. 우스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포와로는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다. 벨기에에서 활동할 당시에 포와로는 그 좋은 머리를 이용해서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해결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살인을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는 '나는 당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사건 의뢰를 거절하기도 한다.
포와로는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영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포와로가 낯선 존재이지만, 이때 이미 런던경시청에서도 포와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전에 벨기에에서 함께 사건을 수사했던 런던경시청의 재프 경감이 포와로를 인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에서, 이방인이었던 포와로가 사건수사의 가운데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재프 경감이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이후로 에르큘 포와로는 영국에서 수많은 사건들과 마주하게 된다. 포와로는 영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호박을 재배하는가 하면, 휴식을 위해서 이집트와 중동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면 우연하게도 에르큘 포와로가 가는 장소마다 기이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도 제각각이다.
나일강을 유람하는 배 안에서 사건이 발생하거나, 파리를 떠나서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살인사건이 터지기도 한다. 이스탄불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특급열차에서 변사체가 발견되기도 하고, 바그다드의 한적한 저택에서 의문의 죽음이 생겨나기도 한다.
회색 뇌세포를 이용해서 사건을 추리하는 포와로이때마다 포와로는 특유의 추리력을 동원해서 하나씩 사건을 해결한다. 포와로의 주위에는 헤이스팅스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그와는 관계없이 포와로의 수사방법은 늘 일정하다. 포와로는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모든 정보를 끌어모은다. '사건수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어!'라고 말한다.
포와로는 또 '범죄를 수사할 때, 외부에서 증거를 찾아내려고 하면 안돼'라고 말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물적 증거가 아니다. 물적 증거가 발견되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만, 거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포와로는 그보다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포와로는 늘 '회색 뇌세포'를 강조한다. 모든 정보를 끌어모은 이후에 의자에 앉아 회색 뇌세포를 이용해 사건의 전모를 추리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제아무리 잘난 에르큘 포와로라고 하지만, 그도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포와로는 조용히 방에 앉아 트럼프 카드를 꺼내서 그것으로 집짓기 놀이를 한다. 카드를 한 장씩 세워 올리면서 카드 건물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카드로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두뇌의 섬세함은 손가락의 섬세함과 병행한다. 포와로는 항상 이 사실을 강조하면서 마치 유아기로 퇴행한 듯한 자신의 '집짓기 놀이'에 대한 변명을 한다.
그는 사건을 해결할 때 정황과 자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서 용의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포와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좀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사건해결에 필요한 추리가 완성되면, 그는 연관된 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주위로 불러 모은다.
그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추리과정을 일일이 연설하듯이 들려준다. 대부분의 탐정이 그렇듯이 포와로 또한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두뇌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때문에 그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거의 언제나 마지막 장면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앞에서 연극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정황증거를 꺼내면서 범인을 지목한다. 물론 완벽한 물적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때쯤 되면 범인의 반응은 두 가지 중에 하나다. 흥분해서 포와로에게 달려들든지, 아니면 자포자기 상태가 돼서 순순히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는 것이다.
스타일즈에서 마지막 사건을 쫓는 늙고 병든 포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