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살인>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장편
동서문화사
대부분 아마추어 탐정들이 그렇듯이, 미스 마플도 사건수사에 뛰어들게 된 것은 우연 때문이었다. 미스 마플은 1930년 작품인 <목사관의 살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이 작품은 미스 마플이 살고 있는 세인트 메리 미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에 이미 미스 마플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 몇 가지를 해결한 경력이 있다.
그런 사건들은 모두 작은 일들이었다. 이 마을은 과거 15년 동안 살인사건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을 만큼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미스 마플의 조카 레이먼드는 이 마을을 가리켜서 '고여 있는 물 웅덩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런 마을의 목사관에서 어느날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당황하고 흥분하지만, 미스 마플은 침착하다.
사건수사 초기에 미스 마플의 의견을 경청하는 사람은 목사뿐이었다. 경찰서장도 미스 마플에 대해서 '늙어빠진 노처녀'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스 마플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경찰이나 사립탐정이 별로 필요가 없다. 이곳의 사람들은 낯선 인물을 경계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스 마플처럼 친숙한 노부인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사건의 이모저모를 캐묻고 다니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그래서 미스 마플도 그렇게 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듣고 보지는 못하지만, 알고 있는 사실로부터 올바른 추리를 끌어내는 능력만큼은 뛰어나다.
<목사관의 살인> 이후로 미스 마플은 아마추어 탐정으로 조금씩 유명해진다. 비록 사무실을 개설하고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스 마플의 명성은 런던까지 알려질 정도다. 태어나서 한번도 세인트 메리 미드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영국의 곳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친구의 초대를 받거나 아는 사람의 소개로 영국 각 지역을 방문한다. 휴양을 위해서 조카와 함께 서인도제도를 여행하기도 한다.
그러면 꼭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외딴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스 마플이 일부러 기차를 타고 그곳으로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미스 마플은 특유의 수다와 친근감을 이용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만다. 때로는 노망든 노인네처럼 연기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기가막히게 흉내내기도 한다. 그러면 경찰은 그녀에게 수사력뿐 아니라 연기력도 대단하다고 웃어넘긴다.
영국 각지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미스 마플뛰어난 직관과 추리력이 있기 때문에 사건의 범인들은 미스 마플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을 것이다. 때로는 직접적인 죽음의 위기에 놓이기도 할 정도다. 그래도 미스 마플은 흔들리거나 겁을 내지 않는다. 겉은 연약한 백발의 노부인이지만, 내면은 강철같은 인물이 바로 미스 마플이다. 한 경찰은 그런 그녀를 보고 '소름이 끼친다'라고 표현한다.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품들의 또 다른 특징은, 사건의 배경이 대부분 영국의 작은 시골마을이라는 점이다. 대저택에서 살고 있는 부유한 상류층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고용한 하인과 운전수, 정원사 등이 있다. 사건 속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은 모두 상류층이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은 혼란스럽게 변해간다. 저택의 주인은 하인들에게 불만을 갖고, 하인들은 고용주를 헐뜯는다. 퇴역군인들은 영국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을 아련히 그리워한다.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보수적인 인물들이 작품을 장식하고 있다.
미스 마플의 말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은 1971년에 발표된 <복수의 여신>이다. 1930년에 데뷔했으니 무려 40여 년 동안 아마추어 탐정으로 활동한 것이다. <복수의 여신>에서 미스 마플은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노인이 되어 있다.
육체는 시들 대로 시들었지만, 악을 응징하려는 의지만큼은 변함이 없다. 호기심도 왕성하다. 여전히 세인트 메리 미드 마을에서 살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해결했어도 그에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조카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힘들지 않게 생활해 간다.
이렇게 독특한 노처녀 탐정을 창조한 작가는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미스 마플의 말년을 고민하고 걱정했을지 모른다. 마지막 작품인 <복수의 여신>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미스 마플이 2만 파운드라는 돈을 거머쥐게 하기 위해서 교묘한 장치를 설정한다. 지금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1970년 당시에는 거액의 돈이었을 것이다. 특히 미스 마플처럼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보내는 노부인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 많은 돈을 미스 마플이 어디에 사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미스 마플에게 마지막으로 거액의 돈을 선물로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애거서 크리스티가 조용한 말년을 보냈던 것처럼, 미스 마플도 그 돈으로 만족스러운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침착하면서도 수다스러웠던, 매력적인 노부인에게 어울리는 말년이었을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0 (완전판) - 복수의 여신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황금가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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