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오션스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폴스 베이
김성호
억울하기 짝이 없는 폴스 베이 만의 이름고래들이 뛰어놀고 하얀 구름에 싸여 있는 아름다운 바다인 폴스 베이(False Bay)가 '가짜 만'이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 인도에서 돌아와 케이프타운 앞 바다인 테이블 베이로 들어가 식량 등을 보충하려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선박들이 폴스 베이로 잘못 들어갔다.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쑥 들어간 모양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원들이 이제는 속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아예 이름을 '가짜 만'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폴스 베이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착각을 한 것은 선원들 자신이지, 폴스 베이가 속인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애꿎게 ‘거짓’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폴스 베이는 수백 년 동안 하소연도 못하고 그 오명의 이름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오늘도 배들은 "가짜 만"이라고 수군대며 지나가지만, 펭귄과 물개들이 즐겁게 뛰어놀며 나의 친구가 되어주니 그것으로 만족하리라며 안으로 분을 삭이는 듯하다. 항상 인간들은 수백만 년 동안 자기 멋대로 평가하고 잠시 머물다 훌쩍 떠나갔으니까.
케이프포인트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어른 키만 한 커다란 타조 두 마리가 차도를 따라 케이프 포인트 쪽으로 올라가고, 왼쪽 초원에는 얼룩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케이프타운의 반대쪽인 대서양의 폴스 베이를 끼고 해안가를 달려 와인농장이 있는 스텔렌보쉬 지역으로 가는 오후 일정이다. 케이프 포인트에서 20여 분 달려 도착한 곳은 사이먼스 타운이다. 언덕 아래로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데, 왼쪽으로는 해수욕장인 모래사장의 씨포스 해변과 오른쪽에는 아프리카 펭귄이 사는 볼더스 해변이 있다.
볼더스 해변(Boulders Beach)은 말 그대로 둥근 돌이 많은 해변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해변에는 둥근 화강암 바위들이 많이 있는데, 아프리카 펭귄들이 바다 속에서 나와 바위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볼더스 해변은 3,000 마리의 아프리카 펭귄이 사는 집단 서식지이다.
아프리카 펭귄의 가장 큰 특징은 남극 펭귄처럼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큰 것이 보통 50cm이고 작은 새끼는 큰 닭보다도 작다. 마치 애완용 펭귄 같은 느낌을 준다. 바다 속에서 더위를 식히며 헤엄을 치거나, 바위로 올라와 쉬거나,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햇볕을 쬐는 펭귄들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햇볕에 몸이 더워졌는지 해변에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펭귄의 걷는 모습을 보라. 마치 갓돌을 지나 걸음마를 하는 아이가 걷듯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귀엽다. 다른 작은 펭귄은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아기자기하다. 등은 검고 배는 하얀 펭귄은 언제 봐도 귀엽다.
아프리카 펭귄을 소개하는 테이블 마운틴 국립공원의 설명서에 보니 펭귄의 등이 검고, 배가 흰 부분에 대한 의문점이 풀렸다. 설명서에는 "펭귄의 배가 흰 것은 바다 속에서 위쪽을 노리는 포식자를 속이고, 등이 검은 것은 하늘 위에서 물 위를 노리는 포식자를 속이기 위한 위장술"이라고 한다. 아, 그래서 펭귄의 등과 배가 그렇게 색깔이 달랐던 거구나. 펭귄은 주로 추운 남극 주변에 서식하는데, 남극을 중심으로 가까운 남아공의 아프리카 펭귄과, 남미의 훔볼트 펭귄과 마젤란 펭귄, 적도 근처 태평양의 갈라파고스펭귄 등은 비교적 온난한 해역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볼더스 베이가 있는 사이먼스 타운은 바닷가를 내려 보며 줄지어선 멋진 집들이 아름답다. 네덜란드식 건축양식의 별장 같은 집이다. 길가에는 핀보스의 일종인 핀쿠션 프로테아가 붉은색과 분홍색으로 활짝 폈고, 병솔나무(Bottle Brush Tree)에는 새빨간 꽃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꽃이 병을 씻는 솔을 닮았다고 하여 병솔나무라고 붙였는데, 정말 이름 그대로 병솔과 똑같이 생겼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사이먼스 타운의 고급 주택가는 그런데 평안하지가 못하다. 마치 성을 쌓은 듯 높은 담장을 올렸고, 대문 입구에 '에이디티(ADT)'라는 보안경비회사가 무단 침입하는 경우 "무장 대응"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붙여 놓았다. 범죄로 인한 남아공의 치안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구이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한다고 했다. 물론, 이 말은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는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가 남긴 말에서 따온 것이다. 저 부잣집의 주인도 높은 담을 쌓고 싶어서 그리했겠느냐마는, 아름다운 바닷가의 전경을 가리는 높은 담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펭귄 구경을 끝으로 오후 1시께 반나절 투어를 신청한 4명의 여행객은 다른 차량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는 오후 일정의 가장 중요한 와인농장 방문길에 나섰다. 피시후크를 지나 뮤젠버그를 지나는데 수천 마리의 바다갈매기와 왜가리, 해로라기 등이 마치 선탠 하듯 늪지대에 앉아 있다. 뮤젠버그는 영국의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그는 이 별장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