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일찍 도착한 사람들로 낙산사는 북적거렸다.
임윤수
손과 발 그리고 몸뚱이로 느끼는 날씨야 구질구질하지만 좋은날, 낙성식에 참가하기 위해 찾아오는 좋은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봉사의 손길 자비의 마음들이기에 그들은 그토록 따스하고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 거라 확신한다.
질척거리고 구질구질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지만 무엇에 대한 확신인지 다들 밝기만한 표정이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현상에만 몰두하는 필자의 마음엔 내일이 걱정된다.
바람 불고 비가나리는 가운데 낙산사에도 어둠이 찾아든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자연의 순리며 톱니바퀴 같은 어둠이지만 커다란 행사를 앞두고 우중에 찾아드는 어둠이라 그런지 문풍지 바람처럼 마음으로 을씨년스러움이 분다.
길목 길목이 어둠을 밝히는 연등우매한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어스름 속으로 연등불이 밝혀진다. 일주문에서 홍예문, 홍예문에서 원통보전,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는 언덕까지 가는 오솔길,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는 언덕에서 보타전과 보타락 앞을 지나 의상대로 가는 길,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가는 길은 물론 다래원에서 후문으로 나가는 길까지 한 꼭지 빠트리지 않고 오색연등을 밝혔다.
낮에 보았던 연등도 아름답지만 어둠 속에 오롯하게 드러난 오색연등은 찬란하고도 영롱하다. 아무래도 주변에 있는 나무나 이런저런 사물들과 함께 섞이니 연등에서 낮에 느끼는 연등의 맛이 텁텁함이었다면 모든 잡 빛이 가려진 밤, 깜깜한 바탕에 드러나는 연등의 오롯함과 불빛은 깔끔하고도 상큼한 맛이다.
맑은 날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경이로움이 반짝이는 별빛이라면 그 별빛만큼이나 경이롭게 맑은 빛을 내는 게 비오는 날 낙산사를 밝히고 있는 연등 빛이다.
연등이 밝혀진 보타전에서는 밤샘기도가 시작된다. 법당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앞마당에 연등을 장엄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임시 공간을 마련했지만 사람의 수에 비해 턱없이 비좁다. 법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임시 공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보타전 뜰, 추녀 밑에 자리를 잡았다. 밀려드는 한기를 막으며 두툼한 목도리를 둘렀지만 두 손은 합장이고 마음은 기도 삼매다.